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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12-06 16:47
부모 덮은 이불 더럽다고? 고얀놈아…”
 글쓴이 :
조회 : 5,816  

부모 덮은 이불 더럽다고? 고얀놈아…”
지긋지긋한 이 가난, 벗어나는 길은 자식 공부뿐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야한다. 나는 지게 밑에 골병이 들었지만 내 자식에게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게는 대물림하지 않으리라… 30여 년 전 그 시절 부모들이 한결같이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평생 지게를 졌지만 남은 것은 골병과 가난뿐이다. 이 모든 것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만 나왔어도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지 않을텐데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라며 아버지는 술만 한잔하면 세상을 원망했다.

“이 지긋 지긋한 지게 밑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공부밖에 없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식들에게 되풀이했다. 내 아들만은 지게를 져서는 안 된다. 지게를 질 바에야 차라리 빌어먹으라는 것이었다. 뼈빠지게 일해도 해마다 보릿고개는 닥쳐 초근피로 연명을 하니 그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당시 농촌 생활이란 거지 보다 나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은 굶어도 자식만은 한번 폼 나게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잘난 자식 덕에 숙여진 어깨도 한번 쭉 펴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자식놈에게 늘 공부를 하라고 입에 달고 있었다. 자식공부를 위해서라면 온몸이 부서져도 마다하지 않았다. 봄이면 어머니는 온산을 훑으며 나물을 뜯었다. 아버지는 공사판과 남의 집을 찾아다니며 지게로 품을 팔았다. 잠자는 것 외는 일만 했다.

농촌에서 웬만한 부자도 자식을 대학에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자식이 대학에 입학하는 그 날부터 아버지의 어깨는 뭉개지고 어머니의 허리는 더 휘어졌다. 옷은 베를 대고 꿰매서 덕지덕지 하고 검정고무신은 닳고닳아 이리 꿰매고 저리 꿰매 완전히 상거지였다. 초라한 몰골이었지만 대학에 다니는 자식 생각만 하면 절로 힘이 솟았다. 아무리 힘든 일도 웃으면서 했다. 남들이 마다하는 더러운 일도 많이만 있으면 좋았다. 남의 집 똥통을 들고 날라도 신바람이 났다. 자식 공부를 시키는 일이라면 머슴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저 집은 짐승처럼 산다. 돈 밖에 모른다고 마을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 아들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처럼 무슨 일이든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식이 힘이었다.

지독한 구두쇠 소리 들어가며 성공시켜 놓았건만

동네 사람들도 죽으나 사나 일만 한다고 뒤에서는 욕을 했지만 사실은 모두다 대학생 아들을 둔 것을 은근히 부러워했다. 고생한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대학을 졸업하면서 국가 고시에도 단번에 합격해 반듯한 직장도 잡았다. 이제까지 고생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렸다. 아버지는 너무 기분이 좋아 몇 년만에 동네 주막에서 막걸리를 거나하게 한잔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덩실덩실 춤을 췄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불러 모처럼 막걸리를 한잔 권하며 사람구실도 했다. 그동안 자식 공부시키기 위해 구두쇠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동네 친구들에게 용서 또한 빌었다.

착하고 공부 잘 하는 아들 신바람에 평생 지게 밑에 골병든 아버지의 어깨도 쭉 펴졌다. 거친 일에 손마디 보다 더 깊게 파인 어머니의 주름살 또한 한결 엷어졌다. 그 시절 농촌에서 말이 쉬워서 대학이지 대학 4년을 마치고 나면 아버지 어머니의 머리는 허옇게 변했다. 얼굴은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한마디로 그 공부는 아버지와 어머니 피였다.

김해에 사는 강끝순(가명•80)할머니는 큰아들 대학 공부를 시키는데 해마다 송아지를 팔아 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온갖 일을 다했다. 그 어렵게 공부를 시켰는데 큰아들이 부모 마음도 모르고 지 자식 밖에 모르니 배신감에 가슴이 아팠다. 제 놈 하나 공부시키려고 동생과 누나까지 온 식구가 다 달라붙었는데 하는 짓이 너무 너무 괘씸 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둘째 아들은 큰아들에 치여 중학교도 간신히 시켰지만 그래도 그 놈이 부모 잘 모시고 지금은 큰아들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큰아들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반듯한 곳에 취직을 하는 바람에 부잣집에서 사위를 삼겠다고 줄을 섰다. 이놈이 결혼식 할 때부터 엄마•아버지 무식하다고 사돈 양반하고 대면조차 못하도록 등을 떠밀었다. 부모들이 초라해 창피하다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밥도 한 그릇 제대로 못 먹고 거의 쫓기다 시피 내려 왔다. 큰아버지는 얼마나 서운했는지 “잘난 놈하고는 일 없다”며 질부의 절도 받지 않았다. 조카를 보고도“16년 공부 말짱 도루묵이다”고 “세상 천지에 부모 못났다”고 괄시하는 놈이 있을 라고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고 아예 돌아 앉아버렸다.

그래도 자식이라 그때까지는 이해 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자식이 보고싶어 된장과 고추장을 들고 천리 길을 찾아갔는데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며느리는 반가움보다는 왜 왔느냐는 식이었다. 된장과 고추장을 집안으로 들여놓지 못하게 밖에서 빼앗아 버렸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가정부를 보고 목욕을 데려 가라고 다그쳤다. 목욕을 하고 왔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목욕을 마치고 나니 가정부가 양말까지 새것으로 갈아 입혔다. 그리고는 입고 간 옷은 쓰레기통에 집어 던져 버렸다. 그 멀쩡한 가름 옷을 왜 버리느냐고 가정부를 심하게 나무랐다. 그러자 가정부는 그 옷은 가지고 오지 말라고 며느리가 시키더라는 것이었다.

“아이고 서럽소~” 돌아오는 것은 며느리 괄시만

밥도 며느리와 아들과 같이 먹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가정부와 같이 먹었다. 그 날 저녁 가정부가 밥숟가락을 보고 기겁을 했다. 그리고는 먹는 숟가락을 얼른 빼앗아 옆 눈치를 살피며 씻었다. 할머니의 며느님이 먹는 숟가락인데 보면은 큰일이 난다고 했다. 더 기가 찬 것은 자신이 먹고 남은 음식은 모두다 쓰레기통에 부어 버렸다. 음식을 버리면 못쓴다고 꾸중을 하자 가정부는 그 잘난 양반이 시어머니가 먹다 남긴 음식을 먹겠느냐며 타박을 주었다. 더 가관인 것은 애써 가지고 간 된장과 고추장도 벌써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한마디로 더러워서 못 먹는다는 것이었다.

집안에 있는 화장실은 아예 문을 틀어 잠가버렸다. 제 놈들만 사용을 하고 바깥 화장실을 이용토록 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머리카락이 하나 빠져 거실에 흘러도 가정부를 들들 볶았다. 시어머니가 잔 방은 소독약을 뿌려댔다. 완전히 몹쓸 병이 걸린 사람취급을 했다. 하룻밤을 자고 나니 만 정이 떨어졌다. 자식놈 먹일 거라고 쑥떡을 곱게 만들어 가지고 갔는데 며느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퇴근한 큰아들이 쑥 떡을 맛있게 먹고 있자 며느리의 눈치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더러운 것에서 그만 손을 놓지 못하겠느냐는 투였다. 아들도 마누라와 어머니 눈치를 번갈아 보더니만 일어서 버렸다. 그러자 가정부가 후닥닥 치워 버렸다.

네년이 목욕탕 끌고 가 옷 벗긴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너무 어이가 없어 눈물이 핑 돌았다. 하루라도 더 있을 수가 없었다. 너무 너무 속이 상해 가정부에게만 살짝 이야기하고 자식에게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나왔다. 오다가 보니 무엇을 안 가지고 와 다시 자식 집으로 갔는데 그새에 자신이 덮은 이불은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고 그 옆에는 먹은 숟가락과 젓가락•컵까지 모두 버려져 있었다. 한마디로 자신이 입에 댄 것은 전부다 버린 것이었다. 너무너무 비참해 현관으로 들어서지 않고 마당에서 바로 돌아섰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나 하룻밤 제 부모 먹고 덮은 것이 더럽다고 버리다니…내가 더러운 병이 들었나 너무 분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며느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식놈이 더 괘씸 했다.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내 굶어 죽어도 네 놈한테는 손벌리지 않으리라! 제 한 놈 대학 시킨다고 온 식구가 밥을 굶다시피 했는데 이럴 수가 있나. 너무 너무 서러워 도로 모퉁이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집을 나왔는데도 아무도 따라 나와 잡는 놈도 없다. 돌아서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했던 시어머니, 그 대단한 권위도 돈 앞에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잘난 며느리로 인한 그 어머니의 수모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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