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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09 02:17
안타까운 필름 유실, 이젠 기록으로만 남은 국내외 영화들 그리고 사라진 영화들
 글쓴이 : 박물관지킴이
조회 : 5,479  
지금은 디지털 영화가 대세라고 하지만, 120년에 달하는 영화의 역사에선 파일보다 필름이 지배하는 기간이 훨씬 깁니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필름이라는 '물질'이 있어야 존재하는 예술이었던 셈이죠. 그러기에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그 영화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최근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한국영화 100선'이라는 책을 펴냈는데요, 마지막 챕터 '잃어버린 한국영화'엔 우리가 지금 볼 수 없는 100편의 한국영화 리스트가 있습니다. 이건 또 하나의 한국영화사인 셈인데요, 한국영화의 시작이라고 하는 [의리적 구토](1919)부터 일제 시대 우리 민족의 한을 담았던 [아리랑](1926)과 [임자 없는 나룻배](1932), [춘향전](1935)과 [심청전](1937) 등을 비롯해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1959)과 전쟁 이후의 주요작들, 그리고 전설의 [만추](1966) 등은 현재 필름이 남아 있지 않은 영화들입니다. 한국영화의 공백이고, 그 거대함을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접할 수 있는 한국영화의 과거? 그건 '절반의 과거'일뿐이죠.
 
 
유실작(lost film)은 말 그대로 잃어버린 영화들입니다. 그 어떤 필름 아카이브나 스튜디오 창고에도 없는, 개인 소장가들의 콜렉션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영화인 거죠. 간혹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영화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은 영구 실종 상태에 처해 있죠.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 보존을 위해 1990년에 설립한 '필름 파운데이션'(Film Foundation)의 통계에 의하면 1929년 이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의 90퍼센트가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무성영화는 사라진 영화들이 살아남은 영화들보다 훨씬 더 많죠.
 
이처럼 만들어진 작품이 사라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고의적인 파기입니다. 특히 1927년에 토키 영화가 등장하면서, 무성영화들은 거의 상업적 가치를 상실했고. 그러면서 스튜디오들은 공간 확보를 위해 대규모로 폐품 처리를 했습니다. 그때는 상영 주기가 끝난 영화의 필름을 보관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거든요. 설사 보관한다 해도,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질산염 필름의 시대였습니다. 만약에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곳에 보관된다면, 다이너마이트나 다름 없었죠. 그냥 폭발해버리는 겁니다. 실제로 1937년에 20세기 폭스의 창고에서 폭발이 일어나 1935년 이전까지 만들어진 20세기 폭스 영화의 모든 네거티브 필름이 사라졌습니다. 1967년엔 MGM 스튜디오 창고에서 불이나 무성영화 시절과 초기 토키 영화 시절의 영화 수백 편이 사라졌고요.
 
 
1950년대에 와서야 아세테이트 필름으로 변환되면서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었고, 최근엔 디지털로 변환되기도 하지만, 질산염 필름 시절엔 필름을 보관한다는 것이 너무나 위험한 짓이었습니다. 그리고 필름에 있는 은 입자를 재활용하기 위해 킬로그램 당 얼마 하는 식으로 팔리기도 했고요. 혹은 집에 영사기가 있는 애호가들에게 필름을 잘라서 팔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기념품처럼요. 한국 같은 경우, 여름에 밀짚모자 챙으로 딱딱한 필름이 제격이라는 이유로 상영이 끝난 영화의 필름들이 잘려져 나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엔, 해외로 한국영화를 수출할 때 필름의 원판이라고 할 수 있는 네거티브 필름을 내보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회수가 안 되어 사라진 한국영화들이 부지기수죠. 할리우드에서, 무성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1927~1950년에 제작된 토키 영화 중 절반은 사라졌다고 하니 현재까지 살아남은 영화들은 어쩌면 운명적인 생명력을 지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영화라는 예술은 역사 초기의 많은 예술가들에 대한 기록을 잃고 맙니다. 조르주 멜리어스가 1896년에 만든 영화 대부분은 사라졌습니다. 무성영화 시절 위대한 여배우였던 티더 배러는 40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남은 건 세 편뿐이고요. 티더 배러와 동시대 스타였던 클라라 보우도 절반 이상의 필모그래피가 유실되었습니다. 굳이 할리우드 얘기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영화의 전설적 이름인 나운규. 배우로 참여했든 연출을 했든, 그의 영화 중 우리가 현재 '필름'으로 볼 수 있는 건 단 한 편도 없습니다. 무성영화 시절부터 해방과 전쟁 후까지 꾸준히 만들어졌던 여러 편의 [춘향전]과 [심청전]도 없고요. 이만희 감독의 [만추](1966)는, 리메이크는 여러 차례 되었지만 그 원본은 확인할 수 없고요.
 
 
하지만 희귀 사례도 있습니다. 유나이티 아티스트(United Artist)의 설립자였던 더글러스 페어뱅스와 매리 픽포드 부부, 찰리 채플린 그리고 D. W. 그리피스 감독의 영화들인데요, 먼저 채플린의 영화는 거의 다 남아 있습니다. 그리피스 감독의 작품도 필모그래피 그대로 존재하는데요, 여기엔 아이리스 배리라는 인물이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녀는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였는데요, 1930년대에 그리피스 영화를 가져와 최적의 상태로 보관했으니까요. '미국의 연인'으로 불리던 매리 픽포드는 그리피스 영화에 주로 출연했고 이후 제작자를 겸하면서 자신의 영화를 대부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활극영화의 대명사 더글러스 페어뱅스의 영화는 대중들에게 인기가 좋아 끊임없이 상영되면서 폐기 처분을 면할 수 있었고요.
 
전체 중 일부가 사라진 '부분 유실작'(partially lost film)도 있고, 편집 이전의 상태 혹은 축약본 혹은 원본엔 없는 삭제 장면 등 흥미로운 방식으로 남아 있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런던 애프터 미드나잇 London After Midnight](1927)은 필름은 사라졌지만 현장을 찍은 방대한 스틸 사진이 남아 있는데요, 이 사진들을 중심으로 시나리오에 맞춰 영화 전체가 복원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라기보다는 슬라이드 쇼 같은 거겠죠. 부분 유실작의 경우, 만약에 사라진 신을 담은 스틸 사진이 있으면, 그 장면만 사진을 이용해 구성해 복원되기도 합니다.
 
 
1950년대 아세테이트 필름의 등장으로 유실작들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컬러 영화는 색이 바래졌고, 산화 작용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1950~60년대 포르노그래피와 B 무비와 실험 영화들이 많은 피해를 봤죠. 앤디 워홀이나 '영화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불리던 에드 우드의 작품이 일부 없어진 건 그런 이유입니다. 그리고 [탑 바나나 Top Banana](1954)나 [사우스웨스트 패시지 Southwest Passage](1954) 같은 3D 영화는 두 벌의 프린트가 있어야 입체 상영이 가능했는데요, 한 벌 밖엔 남지 않아 지금은 2D 영화가 되었습니다.
 
영화가 사라지는 현상을 살린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텔레비전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영화를 상영하면서 수익을 거두게 되자, 스튜디오들은 과거 영화들을 신경 써서 보관하기 시작한 거죠. 이후 비디오와 DVD 등 부가 판권 시장이 열리자 이젠 단순한 보관이 아니라, 여기저기를 뒤지며 고전 영화를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늦은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다행이죠. 2000년 이후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며 리마스터링 작업과 함께 많은 고전들이 퀄리티의 손상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긴 시간 동안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되었고요.
오래 된 영화의 가치가 인식되면서, 영화 산업은 오래된 영화의 발굴에 힘쓰게 됩니다. 최근 한국영화계에서 그런 노력들이 있어 왔는데요, [로보트 태권V](1976)가 대표적이었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애니메이션이었지만, 1980년대에 극장에서 [로보트 태권V]를 다시 보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1981년에 미국으로 수출하던 중 원본 필름이 유실되었기 때문이죠. 제작 당시의 셀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셀 가격이 너무 비싸 끊임없이 재활용했기 때문이죠. 한국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사라진 것처럼 여겨졌고 부득이하게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반전이 일어났죠. 2003년 4월 영화진흥위원회 창고에서, [로보트 태권V]의 필름이 발견된 겁니다. 원본 프린트는 아니었지만, 네가 필름 상태로 복제한 듀프네가 필름이었죠. 이후 복원 과정에 들어갔고, 10억 원의 예산을 들인 끝에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으로 30년 만에 부활해 극장에 걸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연한 발견은 종종 일어납니다. 매리 픽포드가 처음으로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던 영화는 [그들의 첫 번째 오해 Their First Misunderstanding](1911)였는데요, 없어진 줄 알았던 이 영화는 뉴햄프셔 지역 어느 농가 헛간에서 발견되었고 2013년에 복원되었습니다. 1910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 [프랑켄슈타인]은 어느 수집가의 콜렉션에 그 희귀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몇 년동안 썩고 있다가 1970년대에 빛을 보게 되었고요. 가장 질긴 생명력을 지닌 영화는 아마도 독일 영화 [타인과 다른 Anders als die Andern](1919)이 아닐까 싶은데요, 동성애적 요소로 인해 나치는 이 영화의 모든 프린트를 찾아서 불태우려 했죠. 하지만 현재까지 이 영화, 남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영화들이 개인 소장가의 콜렉션에서, 낡은 극장의 창고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 한 구석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있는데요,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만큼이나 옛 영화를 제자리로 돌려 놓는 작업도 중요한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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