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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으로 엮은 집…하나로 엮였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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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물관지킴이
댓글 0건 조회 2,307회 작성일 05-12-0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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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으로 엮은 집…하나로 엮였던 사람들
기억을 엮어 초가지붕 떠올려보니…



지금 시골에도 초가집이 없다. 어쩌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민속촌의 초가집이라도 보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기만 하다. 30여년 전에만 해도 그 흔하든 초가집은 눈을 닦고 봐도 없다.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 버린 귀하고 귀한 관광상품이 되어버렸다.
색 바랜 초가지붕위로 보름달 보다 동그란 박이 똬리를 틀고 굴뚝위로 모락모락 뿜어내던 저녁 연기, 제비가 빙글빙글 돌던 한가로운 풍경은 빛 바랜 사진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초가집은 그 시절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다. 반면에 한 동네 한 두 집 있는 기와집은 부의 상징이었다. 웬만한 논마지기를 가지고 기와집에 산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려웠던 시절 초가집에 얽힌 에피소드는 누구나 한두 가지쯤 있을 것이다.

새 이엉 올리기•불끄기 ‘온 동네 사람 북적’

매년 가을걷이를 끝내고 나면 한 보름간 모든 일을 제쳐두고 집집마다 이엉을 엮어 지붕을 갈아 덮느라 분주했다. 새 지붕을 갈아 덮는 일은 한 두 명이 할 수 없었다. 그 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서로 거들며 품앗이를 했다. 점심도 푸짐하게 차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나눠 먹는 잔치 날이었다. 집집마다 새 지붕을 덮고 나면 온 동네는 노란 물감을 칠 한 것처럼 황금빛 일색이었다. 그 황금빛도 겨울을 지나고 봄비를 맞고 나면 검게 변해갔다.

유달리 비가 잦은 해는 이엉이 빨리 썩어 본격적인 장마철이 들이닥치기 전에 방안에 빗물이 새었다. 그럴 때마다 물통을 총 동원하여 빗물을 받아내느라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태풍이라도 부는 날에는 온 지붕을 들 쑤셔 놓아 여기저기서 이엉이 치켜들고 섰다. 태풍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짚단으로 지붕을 땜질해 쥐가 파먹은 것처럼 울퉁불퉁 했다.

제비가 처마 밑에 집을 지어 알을 낳고 를 치면 눈치 빠른 구렁이가 제비 를 잡아먹겠다고 서까래 끝머리를 타고 슬그머니 들어온다. 마루에서 놀던 아이들은 뜻하지 않은 불청객의 침입에 놀라 혼비백산을 한다. 어미 제비는 에게 위험이 닥치자 빨랫줄에 앉았다 날았다 구렁이를 향하여 쏜살같이 돌진하며 안절부절 못한다. 그 때마다 구렁이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턱 부러지도록 입을 벌리고 한 입에 삼킬 태세다. 구렁이가 가까이 오는 줄도 모르고 제비들은 먹이를 달라고 연방 고개를 내민다.

다급한 어미제비는 구렁이로부터 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쳐보지만 역부족이다. 구렁이는 아무리 까불어도 독 안에 든 쥐라며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마당에서 모이를 쫓던 닭들도 심상찮은 분위기에 고개를 치켜들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기 바쁘다. 저쪽에서 모이를 쫓던 수탉이 처마 난간을 타고 들어오는 구렁이를 보고 꼬꼬댁거리며 위험 신호를 알린다. 그리고 머리 깃털을 바짝 세우고 단번에 요절을 낼 듯이 시위를 벌이며 힘 자랑을 한다. 마당에서 놀던 닭들은 수탉의 위험신호에 바쁘게 몸을 피하면서도 지네가 눈에 보이자 단번에 쪼아 삼켜 버린다.

노인들은 집에 들어온 구렁이는 잡지 않는다며 “여기는 너 살 곳이 아니다. 저 멀리 가거라”며 두 손을 모아 정중하게 기도를 올린다. 그때 마침 지붕을 타고 내려오던 쥐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이러 저리로 뛰어 다니며 까불락 거린다. 장독대를 한바퀴 삥 돌았다가 돌담을 가로질러 다시 지붕을 향해 총총걸음으로 내달음 친다. 그러다가 갑자기 온 몸을 발발 떨며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섰다. 눈앞에 구렁이가 “너 이놈 잘 만났다 오늘 너 제삿날인줄 알아라” 며 입맛을 쩍쩍 다시며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필 저 무지막지한 놈에게 걸려들다니…쥐는 심한 공포감에 도망갈 엄두도 못 내고 앞다리만 바둥거렸다.

그 판국에 똥파리는 어디서 냄새를 맡고 왔는지 벌벌 떨고 있는 쥐의 이마에 찰싹 내려앉아“이놈아 까불다가 알아봤다 꼴 좋다”며 이제는 어차피 죽을 몸 너 고깃덩어리 썩어 자빠져 꼬린 내 피우면 그 때는 내가 깨끗하게 처리 해주마 내가 도울 것은 그것뿐이라며 약발을 잔뜩 올리고 휑하니 날아 가버린다. 그쯤 되면 온 동네 아이들이 무슨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그처럼 우르르 몰려들었다. 심심하던 차에 구렁이가 딱 걸려든 것이다. 여기 저기서 구렁이로부터 빨리 제비 를 구해야 한다는 다급한 목소리다. 아이들은“이 못 된 놈”하며 긴 작대기로 단번에 구렁이를 땅으로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살려고 발버둥치는 구렁이를 향하여 여기저기서 돌멩이가 날아든다. 구렁이는 피를 흘리면서 담벼락의 구멍을 찾아 필사의 탈출을 시도 해보지만 아이들이 따라 다니며 던지는 돌에 맞아 죽고 만다.

뱀•쥐•닭…온갖 것들 모여들던 ‘모두의 집’
그 뿐만 아니었다. 초가집은 지붕이 짚이다보니 벌레들이 들끓었고 유달리 화재가 많이 일어났다. 그리고 피해도 컸다. 불똥이라도 튀는 날에는 순식간에 불이 옮겨 붙어 집 한 채를 태워 버렸다. 한번 불이 나면 이웃집으로 빠르게 번져 동네 집 한 두 채 태우는 것은 예사였기 때문이었다.

부산에 사는 권히욱(59)씨는 총각 때 동네에 불이 났는데 불을 지른 범인으로 지목돼 십년 감수를 했다고 한다. 그 날 저녁 10시가 넘어서“불이야”“불이야” 하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한 마디로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깊은 잠에 빠졌던 사람들이 놀라 속옷바람으로 뛰어 나갔다. 일단 마당 복판에 서서 자신의 지붕부터 살폈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고 물통을 들고 연기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불 소리에 너무 놀라 정신 없이 밖으로 뛰어 나오다 보니 속옷차림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한숨을 돌리고 보니“아이구 이 가슴”하며 깜짝 놀라 그 바쁜 와중에서도 옷을 입으러 다시 집으로 뛰어 가는 사람, 사람이 죽는 판에 그까짓 것이 대수냐며 속옷바람으로 불을 끄는 사람 천차만별이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불을 끄려면 물통을 들고 가야 되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간장단지를 들고뛰었다.

검은 연기가 치솟으면서 거대한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총출동하여 가까운 개울에서 물을 이고 지고 퍼다 날랐다. 불은 바람을 타고 더욱 세차게 번져 갔다. 현장에서 불을 끄는 사람들은 물을 빨리 가져오라고 야단이다. 물이 모자라자 밭 거름용으로 모아놓은 오줌도 퍼다 날랐다. 나중에는 소오줌이고 똥물이고 간에 물이라는 물은 닥치는 대로 갖다 부었다.

집주인은 불을 끌 생각은 않고“아이고 내 집 다 탄다”며 마당에서 팔짝 팔짝 뛰고만 섰다. 한쪽에서는 방안에 들어가 옷가지를 들어내고 나락가마니를 들어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분업적으로 이뤄졌다. 이미 난 불 집은 태우더라도 먹을 양식만이라도 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불이 난 이웃집은 불을 끄는 것은 뒷전이고 자기 집으로 불이 번지지 않게 지붕에 멍석을 깔아 놓고 물을 들이부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짝 마른 지붕에 금방 불이 옮겨 붙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지붕 위에 올라서서 불똥이라도 튀어오면 번개같이 달려가 물을 부었다.

그렇게 한 밤의 불난리가 끝이 나고 나면 누가 일부러 불을 질렀다며 갖가지 소문이 돌았다. 지붕에서 불이 붙은 것을 보면 분명 고의로 했다고 단정을 지어 버린다. 그러다 보니 동네에서 미운 오리는 한번쯤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자신에게 화살이 집중되었다. 그 집 처녀와 사귀었는데 자신을 버리고 시집을 가는 바람에 화풀이로 저녁에 담뱃불을 던졌다는 것이었다. 그 얼토당토 않은 끼워 맞추기에 불낸 범인으로 몰려 엄청난 곤욕을 치렀다. 불이 난 집 주인은 술만 한잔 마셨다면 집을 물어 달라고 찾아와 생떼를 썼다. “봤나, 본 사람 있다”“누군지 밝혀라, 이야기 할 수 없다”며 대판 싸움을 벌이기 일쑤였다. 지금도 엉뚱하게 화살을 맞아 곤욕을 치렀던 그 때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한다. 당시에는 소방차도 없었다. 불이 났다면 순전히 사람의 손으로 불을 꺼야 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내일 같이 움직여야 했다. 특히 겨울철이나 봄철에는 가뭄으로 더 피해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