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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광땡이만 오라! 집 한 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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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물관지킴이
댓글 0건 조회 2,016회 작성일 05-12-0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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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광땡이만 오라! 집 한 채다



밤낮으로 농사일에 시달리고 농한기에는 를 꼬거나 짚신을 삼는 등 늘 생활고에 시달리는 농민들에겐 화투놀이는 명절이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한 두 번 잡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사람 셋만 모이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스톱 판을 벌일 정도로 전 국민의 놀이 문화가 되었지만 30여년 전에만 해도 화투를 잡는 것은 그렇게 환영받지 못했다. 심심풀이 오락이라도 어른들의 눈에 띄는 날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한마디로 화투짝을 만지는 놈 치고 안 망한 놈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집안에 화투짝만 보이면 당장 아궁이에 집어넣었다. 보릿고개 시절 망국 병이라 할 정도로 그 만큼 화투의 폐해가 컸던 것이었다.

처자식 굶어도 돈되는 물건은 노름판으로

초근피로 연명하면서도 노름에 미쳐 날밤을 꼬박 새우는 사람들이 동네마다 꼭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산으로 들로 나물을 뜯으려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마누라와 배고파 우는 자식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처자식은 굶어 죽든 말든 논문서고 집문서고 숟가락 몽둥이 하나까지 다 갖다 날랐다. 노름에 눈이 뒤집히다 보니 온종일 화투짝이 눈에 아롱거렸다. 삼팔광땡이 두 장만 잡으면 끝난다. 하루 저녁 청기와 집을 수 십채를 지었다 뜯었다. 돈이 밀물처럼 밀려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왕창 한번 끌어 모아 인생역전을 이루리라 허황된 욕심은 목까지 차 올라 연방 침을 꿀꺽 꿀꺽 삼켰다.

그러다 보니 하룻밤새 논밭을 모두 날리고 알거지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단돈 일원이라도 생기면 노름판으로 달려갔다. 노름에 한번 빠져든 이상 제 정신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노름 밑천이 될 만한 물건뿐이었다. 안보이던 밥그릇이라도 하나 보이면 눈이 번쩍 뜨였다. 장롱 속에 꼭꼭 숨겨둔 논문서를 들고 나가면 우리 모두 굶어 죽는다고 울며 붙잡는 처자식을 향해 손찌검도 예사였다.

이처럼 노름은 마약과 같아 한번 수렁에 빠져들면 정말로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시골에서 제법 논마지기나 부치면서 떵떵거리며 잘 살던 부자도 하룻밤 노름에 빠져 전 재산을 날리고 온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노름빚에 못 견뎌 야반도주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려운 시절 어른들이 모여서 놀이로 술내기 화투 친다는 말만 들어도 집에 있는 아낙네들은 가슴이 철렁거렸을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혹시나 큰돈이라도 잃을 까봐 아버지를 데려오라고 자식들을 발발이 보냈다.

스물 대여섯 살 먹은 총각들이 노름빚을 갚기 위해 한밤중에 축담에 쌓아 놓은 나락가마니를 아버지 몰래 져내는 바람에 도둑이 들었다고 온 동네방네를 떠들고 다니며 없어진 나락 가마니를 찾는다고 난리를 피우는 일도 심심찮게 있었다.

대구서 사업을 하는 남기선(68)씨는 지금도 화투 이야기만 나오면 무슨 큰 벼슬이라도 한 듯이 입에 침을 튀긴다. 하루라도 화투짝을 안 들면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노름에 손 댄지 일년만에 집에 있는 숟가락 몽둥이 하나까지 안 남기고 다 팔아먹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온 동네 돈은 다 빌렸다. 본전생각에 눈이 뒤집혀 논문서고 집문서고 닥치는 대로 들고 나갔다. 문전옥답이 노름판에서는 완전히 개 값이었다. 그저 뺏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룻밤에 논 두마지기 날리는 것은 예사였다.

더 미치는 것은 될 듯 될 듯 하는 것이었다. 팔 두장을 쥐고 이번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내 돈이라며 휘파람을 불었다. 끌어 오르는 벅찬 가슴으로 판돈을 여유 있게 끌어당겼는데 저쪽에서“손떼라”라면 구 두장을 내놓는다. 그러면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고 복도 지지리도 없지… 삼을 쥐면 저 놈이 사를 쥐고 번번이 문 앞에서 무너지니 미칠 지경이었다. 다시는 화투짝을 쥐면 손목을 자르겠다고 명세를 했지만 하루 밤만 자고 나면 갓 쓴 비 영감과 훤한 팔광•사쿠라 꽃이 만발한 삼광이 눈에 빙글빙글 돌았다. 매일 48페이지 공장은 돈 놓고 돈 먹기라면 어김없이 돌아갔다. 본전 생각에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보리쌀 한 주먹도 나올 것이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집구석을 이 잡듯이 뒤졌다. 내일 끼니 거리로 장독 깊숙이 숨겨놓은 보리쌀이 눈에 번쩍 띄었다. 화투를 칠 수 있다는 생각에 온 몸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보리쌀을 어깨에 둘러메고 노름방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발걸음은 얼마나 가벼운지 총알처럼 핑핑 날았다.

보리쌀 자루를 들이밀기가 무섭게 재수 없게 이따위 보리쌀은 안 된다. 한 줌 움켜쥐더니만 얼굴에 휙 뿌렸다. 때려죽이고 싶도록 엄청난 모욕이었지만 화투판에 끼이기 위해 참았다. 보리쌀 한 자루도 한판에 날아 가버렸다. 한 패만 더 달라고 손이 닳도록 빌었다. 그때마다 돈 없으면 마누라 바지라도 팔아 가쥐고 오라며 빈정거렸다. 노름판에서 돈 없는 그 비참함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손목자르겠다는 다짐 본전생각에 또 쥐고

그 때 문이 덜커덩 열리더니만 낯선 남자들이 들이 닥쳤다. 그들은 말도 없이 군홧발로 화투판을 자근자근 밟아 버렸다. 그리고는 집문서에 땅 문서까지 요 촌놈들이 간덩이가 붓기는 부었네 하며 죽일 듯이 내려보았다.

“세상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판국에 이 들은 오뉴월에 완전히 늘어진 개 팔자구먼” “잘 걸렸다” 오늘은 네놈들 초상 날인 줄 알라며 길길이 설쳤다. 그 때 한 사람이 당신들 누구야 하며 대 들었다. 말도 떨어지기 전에 나무 막대기가 사정없이 입을 꾹 찔렀다. 그리고는“이 쓰레기 같은 자식아 니가 알아서 뭐할 끼고”묵직한 군홧발이 사정없이 어깨를 내리 밟았다. 돈 내놔라 십원이라도 숨기는 놈이 있으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윽박 질렀다. 서로 눈치만 살피며 뜸을 들이자 사정없이 발길질을 해댔다. 숨긴 돈을 찾는다며 바지도 벗게 했다. 한참 동생뻘 되는 놈 앞에서 아랫도리를 내놓고 서 있으려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바지를 올렸다가는 저 무지막지 한 놈에게 살아 남지 못할 것 같아 죽을 지경이었다. 자신의 아랫도리가 다른 사람보다 특이한 것도 없는데 유달리 시선이 집중되는 것 같았다. 낯선 놈들은 쑥덕거리며 히죽 히죽 웃어댔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 날 저녁 개 맞듯이 맞았지만 그 사람들 덕택에 노름판에서 날린 논문서는 다 돌려 받았다. 훗날 알았지만 자신의 형님이 혼을 내주기 위해 꾸민 것이라고 한다.

부산에 사는 김순임(65)씨는 노름이야기만 하면 지금도 분해서 온 몸이 떨린다고 한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노름에 미쳐 일은 뒷전이었다. 손바닥만한 땅 뙈기도 남아 남지 않았다. 밥 굶기 딱 십상이었다. 매일 노름에 미친 남편 꼴을 보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저 놈의 노름판을 확 뒤집어 놓고 말겠다고 이를 팍팍 갈았다.

한날은 자신이 친정에 갔다오니 결혼반지가 없어졌다. 노름판에 팔아먹었다고 남편을 의심했지만 남편은 딱 잡아뗐다. 그래 이번에는 단단히 버릇을 고쳐 주겠다며 물통에 오줌을 가득 담았다. 눈에 불을 켜니 무서운 것도 없었다. 남편이 있는 노름방에 쳐들어가니 희미한 호롱불 아래 돈독이 올라 화투짝을 눈이 빠지도록 쳐다보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늙은 놈이나 젊은 놈이나 잘한다”며 미친 듯이 오줌을 들이부었다. 방안은 일순간에 냄새가 진동을 하며 난장판이 되었다. 엉겁결에 오줌세례를 받은 노름꾼들은 놀란 나머지 말도 못하고 눈만 깜빡거렸다. 머리가 허해 가쥐고 자식 같은 놈 데리고 잘 논다며 욕을 만 바가지로 끌어 부었다.

한참 만에야 사태를 파악했는지 그 중에 나이가 많은 사람이 분을 못 이겨 펄쩍 뛰더니만 자신의 남편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여편네 단속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 사내라고 깝죽거리나 나가서 죽어 라는 것이었다. 갓 시집온 새댁이 보통이 넘는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동네 퍼졌다. 시어머니는 저년 때문에 우리 집 망했다며 몸져 누웠다. 일흔이 다된 나도 그런 짓은 못한다. 그 기가 어디라고 귀때기가 새파란 년이 그 난리를 피웠느냐고 며느리를 덜덜 볶았다. 동네 사람 둘만 모이면 누구 집 며느리 거세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암탉이 울면 집구석이 망한다며 그 집구석 앞으로 뻔하다며 입방아를 찧었다. 그 일로 도회지로 살림을 나왔다고 한다. 당시 갓 시집간 새댁이 당돌한 행동이었지만 남편의 손버릇을 고쳐서 천만다행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