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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피면 그때 그 아이들은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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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물관지킴이
댓글 0건 조회 2,258회 작성일 05-12-0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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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피면 그때 그 아이들은 웁니다
검은머리 ‘백설’ 내릴때까지 앞만 보고 달려네



가쁘게 달려온 인생, 돌아보니 하룻밤이 지난 것 같은데 어느새 마흔을 훌쩍 넘어섰다. 한잠을 자고 나니 팔순이더라는 노인들의 말이 실감이 난다. 어렸을 때에는 마흔은 너무나 멀고 먼 길, 오십은 나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고 멀고 멀었던 그 마흔이 총알같이 지나갔다. 오십이 어느새 코앞에 닥쳤다. 인생이 마라톤이라면 반환점을 돌았고 산을 올랐다면 정상을 딛고 하산중이다.

검은 머리는 백발을 토해내는 줄도 모르고 그 동안 우리는 앞만 보고 정신 없이 달려왔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서니 반백의 머리에 손마디 같이 굵게 파인 주름살이 장난이 아니다. 이제까지 남 나이 먹는 줄만 알았지 자신이 나이를 먹는 줄은 느끼지 못했다. 거울에 비친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그 때서야 옆집 아저씨만 늙은 것이 아니라 나도 늙었구나 하는 것을 퍼뜩 깨닫게 된다.

초등학교 꼬치 친구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그 자식 명은 짧아 가지고 먼저 갔다며 사람 사는 동네에 흔하게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겼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니 결코 그 친구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어느 날 자신에게도 그 친구처럼 불현듯 다가 올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인생 무상에 가슴이 찡하다. 내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쫓아 살았는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 본다.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했지만 남들처럼 빌딩을 사 놓은 것도, 대궐 같은 집을 사 놓은 것도 아니고 콧구멍 만한 집 한 채가 전부다. 그런데도 늘 바쁘기만 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주위에 너무나 무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남 앞에 내세울 것도 뚜렷하게 이루어 놓은 것도 없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꽃 소식에 불현 듯 어릴적 뛰어 놀던 고향의 나지막한 뒷산이 떠오른다. 그 뒷산에는 봄이면 유난히 진달래가 많이 피어 온산을 벌겋게 물들어섰다. 먹거리가 귀하던 그 시절 진달래꽃은 시골 아이들에게 푸짐한 먹거리였다. 온 동네 아이들이 산으로 뛰어 올라가 진달래를 한 움큼씩 따 입이 터지도록 볼록 볼록 씹었다.

한나절 진달래 꽃밭에서 놀다보면 얼마나 진달래꽃을 많이 따먹었는지 모두다 입술이 불그스레하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물오른 소나무 가지를 꺾어 송기를 벗겨 먹으면 너도나도 소나무 가지를 꺾어 능숙한 솜씨로 하모니카를 불 듯이 입을 좌우로 연방 돌렸다. 배고팠던 그 시절 그 맛도 꿀맛보다 달콤했다.

어릴적 떠난 철수 지금 어디서 살고 있으려나

한아름씩 꺾어 와 간식 삼아 먹었던 진달래, 뒷산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진달래가 피었다. 나물 캐던 양지에는 냉이랑 쑥이랑 싹을 틔웠다. 풀을 베던 그 언덕의 그 아지랑이도 내 어릴 때 보던 그 아지랑이다. 그 밑으로 파릇파릇한 새싹이 변함 없이 돋아나고 있다. 매년 봄이면 입이 심심했던 동네 아이들에게 간식 거리를 제공했던 찔레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양지바른 할아버지 묘 옆에 피어나던 할미꽃도 그 수는 예전보다 훨씬 적지만 올해도 변함 없이 고개를 내밀었다.

꼴 망태 내려놓고 물가에 올망졸망 앉아서 버들피리 만들어 불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돌 하나 하나를 들추면 지천으로 널려 있던 소라도 그 때처럼 흔치 않지만 여전히 그 개울에 그대로 있다. 물 따라 오르는 미꾸라지도 촐랑촐랑 꼬리를 흔들며 제 세상을 만난 듯 신바람이 났다.

고향을 떠나온 지 수 십 년이 흘렀지만 이처럼 고향의 산천은 변한게 없다. 다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변화는 하늘과 땅 차이다. 늘어만 가는 빈집에다 젊은이가 없어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나물 뜯고 풀 베고 소 쟁기 끌던 그 어릴적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구루마로 나락을 실어 나르는 사람도 비를 맞으며 모를 심는 사람도 도리깨로 보리타작을 하는 사람도 없다. 그 자리엔 기계만 많이 왔다 갔다 한다. 지금쯤 보리가 쑥 쑥 자라야 할 들판에는 비닐 하우스로 덮여있다.

온 식구들이 논두렁에 걸터 앉아 새참을 들며 이 논 저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나누어 먹었던 그 정겨움도 없다.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가며 한 발짝 떼고 입에 대고 또 입에 대고, 꼬불꼬불한 논두렁길로 비틀비틀 거리며 걸어가던 꼬마들의 모습도 우리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산업화 물결 따라 뿔뿔이 흩어졌던 그 사람들, 그 시절엔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고된 농사일이 하루가 지겨울 정도로 탈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절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그것은 그 만큼 각박한 도시생활에 찌든 탓일 게다.

나이가 오십 줄에 들어서면 어릴적 동무들이 보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다. 남의 집 보리밭으로 꼴 망태 질질 끌며 뛰어 다니다 혼이 난 그 동무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초등학교 선생님은 같이 공부하던 동창생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 동무들은 아버지 따라, 도회지로 공부하러, 돈벌러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말 없이 그냥 그렇게 떠나갔다. 물가든 골목이든 한번 앉으면 해가 지도록 놀았던 그 또래들, 이사를 가는 그 날까지 개울에서 정신 없이 물장난을 했다. 바쁘게 찾아 나선 어머니는 “우리 철이 멀리 간다”며 또래 아이들의 머리를 한번씩 쓰다듬었다. 또래들과 노는 것이 좋은 철이는 어머니 손에 끌려가면서도 못내 아쉬운지 입을 삐죽거리며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남은 또래들은 떠나가는 철이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이다. 한밤 자고 나면 내일 또 놀러 나오겠지 하며 다시 하든 물장난에 정신을 팔았다. 그러나 철이는 그 후 영영 나오지 않았다. 물에 젖은 옷을 입은 채로 그렇게 어머니의 손에 끌려 떠나 간 철이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세월이 까마득하게 흘러 이제는 이름마저도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하다.

어느 날 쳐다보니 그 많았던 또래들이 하나 둘 서울로, 부산으로, 강원도로 떠나 가버렸다. 조무래기들의 재잘거리던 골목길도 조용해졌다. 너무나 긴 세월이 흘러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해 있겠지만 어디에서 살든 간에 흙먼지 뒤집어쓰고 산이고 들이고 뛰어 놀던 그 추억만은 모두의 가슴속에 아직도 진하게 남아 흐를 것이다. 중장년층들에겐 초등학교 시절이 그립기는 마찬가지다.

돌아보니 졸업을 한지도 벌써 30~40년이 훌쩍 흘렀다. 누런 코를 닦아주던 선생님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지금쯤 칠순을 훨씬 넘겼을 것인데 건강하게 살아 계신지….

책상 위에 줄을 그어놓고 연필이고 지우개고 넘어오면 인정사정 없이 빼앗아 갔던 그 못 된 짝꿍은 지금 무엇을 하며 어디서 살고 있을까? 집이 가난해 한겨울에도 양말을 신지 않고 다닌 상인이는 돈을 많이 벌어 잘 살아야 될텐데…. 유난히 키가 작아 모든 반 아이들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철수는….

6년 간 손때 묻은 그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어 건물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먼지가 푹신푹신 날렸던 그 운동장은 말라비틀어진 잡초만이 뒹굴고 있다. 수음지에 선 아름드리 나무만이 고목이 되어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세월의 야속함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저 교실도 머지않아 우리의 눈에서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어려웠던 시절 한번 잘살아 보겠다고 고향을 등지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그렇게 떠나간 후 한번도 만날 수 없었던 소꿉동무들, 모두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코 흘리며 뛰어 놀던 동무와 고향의 흙 냄새에 대한 그 애틋한 마음도 그 시절을 지나온 중•장년층들의 가슴에만 남아 있을지 모른다. 중•장년층들이 그 시절이 그리워 돌아보는 것도 어려운 시절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이 많았지만 서로 보듬으며 살았던 살가운 정이 새삼 그립기 때문이다. 시멘트 문화에 자라나는 세대에겐 고향과 소꿉동무는 있어도 마음속에 감고 짙게 흐르는 고향과 가슴 한구석을 지키는 소꿉동무는 영원히 없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떠난 농촌은 마을도 헐리고 학교도 헐리고 있다. 어려운 시절 삶의 버팀목이었던 중•장년층들의 고향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