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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처녀 가슴처럼 붉게 타오르던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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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물관지킴이
댓글 0건 조회 2,313회 작성일 05-12-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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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처녀 가슴처럼 붉게 타오르던 동백꽃
봉오리째 떨어지는 동백꽃 보며 ‘인생무상’ 깨닫기도



동백나무는 1~2월에 벌써 진홍빛을 토해낸다. 그래서 동백꽃은 예부터 시조나 노래가사에 자주 올랐다. 동국이상국집에 동백화(冬栢花)라는 제목의 시가 실려있으며, 조선왕조 때는 동백 혹은 산다화(山茶花)라 하였다. 지금처럼 화장품이 없던 시절 늦가을에 여무는 열매를 짜서 만든 동백기름은 여인네들이 머리를 단장할 때 사용했다. 쪽진 머리를 참빗으로 곱게 빗은 다음 동백기름을 살짝 바르면 매끈하고 은은한 향내는 뭇 남성들의 가슴을 잡았다. 한때는 귀해 양반 집 규수들도 바르기 어려웠다고 한다.

단종 때는‘동백기름은 진상하지 말도록 하라’하였고, 중종은 ‘창고에 납입하는 지방의 짙은 황색의 유동기름과 동백기름은 모두 줄이도록 하라’는 기록이 있다. 동백기름은 왕실에서조차 아껴 쓰는 고급 머릿기름이었다. 이처럼 동백은 꽃도 아름답지만 그 열매도 아주 귀중하게 여겼다. 대부분 꽃들은 질 때 꽃잎이 한 잎 씩 떨어지나 동백꽃은 어느 날 목가지가 통째로 떨어져 버린다. 붉은 정열처럼 화려하게 피었다가 질 때도 화려하게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동백의 추한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다. 젊은 여인이 죽었을 때는 동백꽃처럼 살다가 갔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동백꽃이 핏빛보다 더 붉디붉은 것은 섬 아가씨의 타오르는 사랑의 열정이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가슴으로 태우고 태운 핏물이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동백꽃이 섬 처녀의 가슴만큼이나 무거운 사연을 담은 탓일까 그 열정이 너무 달아오른 탓일까 하룻밤 비바람에 검붉은 꽃봉오리들이 굵은 빗방울처럼 후두두 떨어져 버리는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나무 끝에서 세상사람들에게 추하게 보이며 시들어 가기보다는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단번에 한 생을 마감하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애잔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동백꽃은 내 잘났니 네 잘났니, 재물에 집착해 하나 더 가지겠다고 성난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는 온갖 세파에 찌든 세상사람들에게 좋은 날과 화려함은 잠깐이라는 것을 몸으로 실천해 보이고 있다. 동백꽃의 지는 모습을 쳐다보면은 그 속에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확한 답이 있다는 것이다.

부와 명예•권력도 저 동백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소인의 눈에는 동백꽃은 붉고 아름다움뿐이다. 군자의 눈에는 세상의 축소판으로 보인다. 실연과 이별 등 세상살이의 집착에서 오는 괴로움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봉오리 째 미련 없이 떨어져 내리는 동백꽃을 보고 인생 무상의 깨달음을 단번에 얻을 만도 하다. 동백꽃을 보는 세상 사람들의 감정도 자신의 처지에 따라 달랐다. 화려하기도 하고 너무 슬프기도 하다는 것이다. 유독 동백꽃만이 시인 묵객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것도 어느날 툭 지고 마는 그 높은 기개를 높이 샀기때문이 아닐까?

절정의 꽃 대궐을 연출하는 선홍빛 동백은 이 봄에도 어김없이 피었다. 어려웠던 시절 동백꽃은 사람들에겐 가슴 설렘이자 희망이었다. 남해안 섬 마을이나 시골의 남자들은 추운 겨울철에는 뭍으로 도시로 날품을 팔러갔다. 이때 이들이 섬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어김없이 한 말이‘동백이 피면 돌아오마’였다. 섬 마을 아가씨에게도 동백이 필 때가 곧 한겨울 내내 가슴속에 꽁꽁 묻어두었던 임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표현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래서 섬 마을 아가씨들은 동백꽃이 피면 머나먼 육지를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하게 된다.

먼 수평선을 끝없이 바라보면서 뭍으로 가고픈 마음을 달랬다. 몇년전에 떠나간 총각선생님을 떠올리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 서울로 이사간 소꿉친구를 그려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지난 겨울에 돈벌러 간 옆집 오빠 생각에 흠뻑 젖기도 한다. 이처럼 동백꽃이 피면 섬 처녀들의 가슴도 동백꽃처럼 붉게 타올랐다. 배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가슴은 열 두번을 방망이질한다. 뭍에서 날아오는 물새만 봐도 소식을 한 가닥 전해줄까 마당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애타는 섬 처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파도는 오늘도 밀려 왔다 밀려간다. 속 타는 마음을 몰라주는 무심한 파도가 얄미워 돌멩이를 던지고 또 던져 보지만 가다가 툭 떨어지고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럴수록 그리움은 더욱 가슴을 조여 왔다.

그래서일까? 섬사람들과 시골 사람들에겐 동백꽃이 피기만을 기다렸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뭍에 나간 남편과 아들이 돈을 벌어 양손에 양식을 가득 들고 돌아오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버지가 떠나간 뱃길을 바라보면서 하마 오려나 눈이 빠지게 기다리게 된다. 동생과 함께 꼬르르 거리는 배를 움켜잡고 파도만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하루해를 꼬박 새웠다. 아버지가 언제 올지 기약이 없었지만 자고 나면 매일 같이 지나가는 배를 셌다. 그러다가 지치면은 동생과 함께 길바닥에서 그대로 퍼질고 앉아 잤다.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잔잔한 파도만 일렁일 뿐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힘없이 왔던 길을 돌아왔다 가를 반복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수평선 너머로 아버지의 잔상이 왔다가 갔다가 하루에도 수천 번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도시로 돈벌러 나온 사내들도 진달래가 피고 동백꽃이 피면은 고향으로 돌아가 처자식을 만난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돈벌어 남들처럼 한번 잘살아 보겠다고 그동안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열심히 일을 했다. 앞산 보다 높은 고층건물에 벽돌을 지고 쉴새 없이 오르락 내렸다.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건물 꼭대기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개미 같이 가물가물했다. 아찔했다. 떨어지면 죽는다는 심한 공포감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추운 날에 이마에는 땀이 맺혀 흘렀다. 잠시 한눈만 팔아도 자식 같은 노가다 감독의 더러운 입에서 쌍소리가 터졌다. 수시로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고 두 눈에는 쌍심지를 켜고 욕을 끌어 부었다. 삽질이 느리다고 모래를 머리에다 퍼 날리며 패악 질을 해댔다. 감독과 눈빛만 마주쳐도 뭐가 잘못됐다 싶어 가슴이 철렁거리며 오줌을 찔끔 찔끔 쌌다. 무엇이 못 마땅한지 나무토막이고 벽돌이고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모두다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머리가 맞아 터져도 그 뿐이었다. 피가 흘러도 닦을 겨를이 없었다. 언제 하늘같은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 쩔쩔맸다.

다그치는 감독의 거친 입은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웠다. 모두다 한 짐을 짊어졌지만 불똥이 튈까봐 숨을 죽이고 짐승처럼 뛰기 바빴다. 설사 벽돌에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일만 시켜주면 그 보다 더 고마운 것은 없었다. 그 악독한 감독이지만 모두다 허리가 부러지도록 굽실거렸다. 하늘같은 감독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당장 밥그릇이 날아갈 판이라 누구하나 찍소리 하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그 소리 듣고 일할 사람도 없지만 그런 감독은 벌써 맞아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은 일하려는 사람은 많고 일자리가 적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그 것보다 더한 일이라도 참아내야 했다. 일단 공사판에 들어서면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했다. 하루종일 고단한 일을 마치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면 아무도 기다려 줄 사람은 없었다. 컴컴한 도시의 뒷골목에서 막걸리 잔을 놓고 긴 한숨만 들이쉬었다 내 쉬었다. 단숨에 두 바가지를 들이마시고 나면 하루 하루살이에 급급한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워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이렇게 살아도 내 자식에게는 절대로 이 고단한 삶을 물려주지 않으리라 열 천 번 다짐을 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거나하게 달아오른 취기에 노랫가락도 절로 터졌다. 꼬불꼬불한 달동네의 골목길은 늦은 밤이었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로 붐볐다. 줄에 연탄 두 장을 매달아 들고 힘겹게 오르는 사람에서부터 한끼 먹을 봉지쌀을 들고 바쁘게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사람까지 세상살이의 축소판이었다. 모두다 힘든 삶이었지만 서로 보듬으며 살아가는 정이 어느 곳보다도 진하게 흘렀다.

냉기만 싸늘하게 흐르는 방구석은 어두움만 짙게 눌렀다.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손 꼽아 기다릴 자식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가슴이 아렸다. 그래 아버지는 스러지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은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다. 내 몸이 부서져도 뛸 것이다. 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세상의 어떠한 비바람도 다 받아 내야 한다. 천근같이 무거운 몸이지만 다시 두 주먹을 불끈 다잡고 공사판으로 내달렸다. 고달픈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진달래와 동백꽃이 피면 보릿고개 시절이 떠올라 감회가 새롭다. 그 시절 짐승처럼 뼈빠지게 일한 그 들이 없었던들 어찌 오늘의 풍요가 있을 수 있겠는가? 동백꽃 진달래 향기가 짙게 깔린 봄은 정말 아름답다. 이 봄에 우리는 어려웠던 그 시절을 온 몸으로 받아낸 그들의 피눈물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