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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판 돈 강도당해 하루아침에 거지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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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물관지킴이
댓글 0건 조회 1,979회 작성일 05-12-0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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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판 돈 강도당해 하루아침에 거지신세
은박지로 싼 나무칼…산꼭대기 소동



음력으로 이월은 한해 농사의 시작이다. 그 동안 묵혀 두었던 농기구도 꺼내 손질을 하며 일일이 점검을 했다. 그리고 부서진 농기구는 다음 장날 미리 고쳤다. 농사를 짓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소였다. 지난 겨울에 아이들의 학비 마련을 위해 키우던 소를 팔고 새로 사들인 집에서는 소를 빈 논에 몰고 나와 쟁기 끄는 연습을 시키느라 바쁘다. 아들은 앞에서 고삐를 잡고 아버지는 뒤에서는 쟁기를 잡고 하루종일 빈 논을 갈아엎으며 반복했다. 소 없이는 단 한 뼘의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시절이라 그래서 소가 쟁기를 끌지 못하면 하루라도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 가 없었다. 그 시절은 소가 농사를 다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집집마다 소는 재산목록 1호였다.

농사철을 앞둔 음력 2월 장날은 소를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으로 붐볐다. 소 장터는 어느 때보다 활기가 돌았다. 대장간에도 농기구를 미리 손질하느라 하루 종일 분주했다. 소 장터에는 바짝 열이 달아올랐다. 여기 저기서 돈 다발을 앞에 놓고 침을 튀기며 세고 또 세고 흐뭇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는 뭉칫돈을 허리춤에 단단히 동여맸다. 돈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불청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시골 장터에도 그들은 예외 없이 나타났다. 그들은 범행 대상을 물색하느라 여기 저기 기웃거렸다. 소를 판 사람 중에서 연세가 많은 사람을 표적으로 삼고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살폈다. 그들은 일단 표적으로 삼으면 끈질기게 따라 붙어 누구라도 돈을 뺏기지 않고는 배겨 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소를 팔아 돈을 가진 사람이 주막에 들어가면 주막에 들어가 막걸리를 마셨다. 경계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술잔도 건하며 친절도 베풀었다. 자꾸 말을 붙이며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지체 시켜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해가 떨어지면 갑자기 강도로 돌변했다.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소판 돈을 강도 당하고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가 되어 버리는 집이 종종 있었다. 농사를 지어 평생을 모아도 모을 수 없는 그 돈을 날렸으니 삶이 막막해 아예 농촌을 등지고 도시로 떠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매일 술로 지새우며 실성한 사람처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동네 아래위를 오를 내리며 원통함을 달랬다.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다 보니 소를 파는 날은 온 집안에 비상이 걸렸다. 아예 식구대로 총출동을 했다. 사람들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소 판 돈을 받아 쥐자마자 바쁘게 자리를 떴다. 자신의 주위에 낯선 사람만 스쳐도, 모르는 사람이 말만 붙여도 가슴이 철렁했다. 누가 따라 붙을까봐 수시로 주위를 살폈다. 그 날은 일절 다른 볼일도 보지 않았다. 얼마나 긴장이 되었는지 그 좋아하는 막걸리가 한 사발도 당기지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한 두 사발을 마셔 코가 빨개졌을 텐데 말이다.

밀양에 사는 차만억(87•가명) 어르신은 지금부터 36년 전에 소를 팔고 오다가 강도를 만나 돈을 뺏기지 않으려고 강도와 사생결단을 벌였다고 한다. 그 날은 소를 사러 집에서 먼 좀 더 큰 장으로 갔다. 면내에 서는 장에는 마땅한 소가 없었다. 당장 농사철이라 더 이상 소를 사는 것을 미룰 수가 없었다. 새벽같이 아침을 먹고 산을 넘어 장터로 향했다. 지름길을 택해 산을 넘었지만 수 십리 길이라 장터에 도착하니 벌써 한나절이 되었다. 한참 소 장터를 돌았지만 마땅한 소가 없었다. “오늘도 허탕만 쳤다.” 그냥 빈손으로 돌아서려니 온 길이 너무 아까워 계속 장터를 돌았다. 다시 높은 재를 넘어 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하늘을 쳐다보니 어느새 해는 기울어져 있었다. “아차 늦었다”는 직감이 강하게 다가왔다. 그 때부터 바삐 서둘렀다. 어둡기 전에 재를 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장터를 빠져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내달렸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산 정상에 올라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지는 해만 쳐다보였다. 발걸음은 따라 주지 않고 마음만 다급해져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어느새 왔는지 옆에 따라붙은 젊은 사람이 “저 재를 넘느냐”고 말을 걸었다. 갈 길이 바빠 그렇다고 고개만 끄덕하고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걸었다. 그런데 그 젊은이도 열심히 따라 걷고 있었다. “젊은이는 어디로 가지”하고 묻자 자기도 저 높은 재를 넘는다고 하였다. 얼굴을 보니 자기보다 더 촌놈이었다. 거무튀튀한 얼굴이 세파에 찌든 모습이 역력했다. 아무리 봐도 악한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저 높은 재를 밤에 혼자 넘기가 꺼림칙했는데 마침 동행을 만났으니 오히려 반가웠다. 같이 갈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바쁘게 걷던 발걸음도 어느새 무뎌졌다. 출출하던 참에 길가의 주막에 들어가 막걸리 한 사발을 둘이서 나누어 단숨에 마셔 버렸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남자 두 사람이 저 재를 넘는데 무슨 별일이야 있겠나 하는 생각에 긴장됐던 마음도 느슨해 졌다. 그러나 산기슭에 들어서니 온 몸이 오싹했다. 별안간 무엇이 나타나 꼭 덮칠 것만 같았다. 젊은이도 바쁘게 따라오고 있었다. 산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쉬었던 동네도 차츰 멀어졌다. 산 정상에 올라서니 밤은 제법 깊어졌다. 자신이 사는 동네의 불빛이 보였다. 다 왔다는 안도감에 담배를 한 개비 무는 순간 옆에 섰던 젊은이가 갑자기 흉기를 들이밀며 강도로 돌변했다. 있는 대로 돈을 다 내 놓으라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했다. 개미 한 마리 서성거리지 않는 산 속에서 강도를 만났으니 가진 돈을 몽땅 다 빼앗길 판이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칼날을 보니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입은 벙어리가 되어 한마디도 떨어지지 않았다. 입에 문 담배만 자근자근 씹었다. 머리는 땅속에 처 박고 주머니에 든 백원을 쑥 내밀자 이 영감이 죽으려고 간땡이가 부었나 10원짜리 하나라도 더 나오면 그냥 두지 않겠다며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그리고는 “갈 길이 바쁘다” 빨리 내놓지 않으면 죽일 태세로 다그쳤다.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 돈을 빼앗기고 나면 자기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절대로 돈을 내 줄 수 없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코앞에 들이댄 흉기를 보니 나무로 만든 칼에다가 담배 갑에 든 은박지를 바른 것이었다.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이 자식이 죽고 싶으면 호랑이 코털을 못 뽑아. “좋은 말 할 때 흉기 치워라”“사람 잘못 봤다 오늘 초상날인 줄 알아라 ”며 큰 소리를 쳤다. 쫓기던 쥐가 오히려 고양이를 무는 격이니 그 젊은이는 무척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돈 보따리를 마주잡고 “놔라” “안 된다”며 한참을 밀고 당겼다. 도저히 자기 능력으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영감님 한번만 살려 주이소, 다만 보리쌀 한 되라도 오늘 안 가지고 가면 우리 여섯 식구는 굶어 죽는다”는 것이었다. 논이라고 두 마지기가 전부인데 매년 흉년에 종자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막노동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만은 면했는데 그나마도 자기 몸이 아파 일을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아이들이 곡식 한끼 구경을 못하니 영양실조에 걸려 누워 있다고 한다. 자신 아내도 매일 나물 죽으로 연명을 하다보니 얼굴은 퉁퉁 부어 오르고 식구 모두다 굶어 죽을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정을 털어놓았다.

아침 눈만 뜨면 자식들이 “아버지 밥”하는 말똥말똥한 눈망울을 보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며 대성통곡을 했다. 지금쯤 자식들은 아버지가 돈벌어 먹을 것을 많이 사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어 자식들에게까지 밥을 굶게 하는 업보를 짊을 졌을까?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성하지 못한 몸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배고파 우는 자식를 안고 아내와 흘린 눈물만도 한바가지가 넘는다는 것이다.
먹고살기가 너무나 다급해 어르신께 무례를 했다며 용서도 빌었다. 방금까지 돈을 뺏기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굴렀지만 듣고 보니 너무나 사정이 딱했다. 불을 붙여 담배 한 개비를 주니 그 젊은이는 자신이 벌인 일이 죄스러운지 연방 담배 연기를 빨아 들였다.
힘없이 돌아서는 그 젊은이의 뒷모습에 불현듯 가슴이 찡했다. 자신도 하루하루 살기가 힘들었지만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젊은이 돈이 적다”며 소를 사러 가지고 간 돈에서 그 때 돈으로 쌀 2말 값을 쥐어 주었다. 그 젊은이는 금세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었다.“어르신도 이 돈이 없으면 소를 못 사 농사를 못 짓는다면서요….” “내 걱정말고 빨리 가거라. 산길을 혼자 내려 가려면 안됐다. 무서우면 이걸로 불을 켜”라며 라이터를 건네 주었다. 그 젊은이는 어르신의 은혜를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살겠다며 큰절을 했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어두운 밤 산꼭대기의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젊은이는 금방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젊은이가 내려간 산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 보았다. 산기슭을 완전히 벗어났는지 횃불을 한 두 번 크게 하늘을 향해 돌리더니만 이내 꺼져 버렸다. 자신의 발 밑에는 담배 은박지를 붙인 나무 칼만이 번쩍였다. 지금도 그 산을 바라 볼 때마다 그 당시의 긴박하고 가슴아팠던 순간들이 어제 일 같이 생생하다고 한다. 그 때의 그 젊은이가 건강을 회복해 잘 살았는지 항상 마음이 찡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