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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끝나면 다시 바빠지는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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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물관지킴이
댓글 0건 조회 1,938회 작성일 05-12-0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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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끝나면 다시 바빠지는 농촌
며느리는 부엌에서, 머슴은 기둥잡고, 자식은 문고리 잡고 울었다



농촌에서 일년 중 가장 한가한 정월, 이 달은 설이라 하여 지게를 지는 일이 없을뿐더러 호미자루를 잡지 않았다. 한마디로 정월은 농민들에게 긴 방학이자 삶의 재충전 기회였다. 한가한 틈을 이용해 설날 찾아뵙지 못한 동네 어른들이나 먼 곳에 있는 친척을 찾아 세배를 올렸다.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설음식을 나눠먹으며 그동안 농사일에 바빠 못 다한 이야기를 오순도순 나누며 정도 쌓았다. 설을 쇠고 나면 동네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지신밟기는 필수였다. ‘농자 천하지대본’이라고 쓴 커다란 깃발을 앞세우고 마을의 집집을 돌았다. 그 지신밟기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한바탕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질펀하게 노는 마을의 축제였다.

풍물패가 가는 집마다 떡과 술을 푸짐하게 내 놓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마음껏 먹고 마셨다. 한껏 흥이 달아오른 지신밟기는 날이 어두워도 끝이 날줄 몰랐다. 온 동네를 돌며 지신을 밟고 나면 시주로 받은 쌀은 좋이 두 가마니는 되었다. 그 쌀을 팔아 구멍난 북도 새로 사고 부서진 징도 장구도 새로 구입했다. 그리고도 남으면 마을에 꼭 필요한 공동사업에 사용했다. 한마디로 정월의 지신밟기는 집집마다 액을 쫓고 마을의 편안함과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이자 일년동안 농사일에 지친 마을사람들의 심신의 피로를 풀고 친목과 단합을 다지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또 마을의 공동사업에 꼭 필요할 돈을 모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마다 풍성한 행사가 벌어졌다. 볏짚으로 아름드리 줄을 만들어 동서로 편을 나눠 줄을 당겼다. 암줄이 이기면 그 해에 풍년이 들고 수줄이 이기면 흉년든다고 했다. 또 마을마다 넓은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친선 윷놀이 대회도 가졌다. 이 윷놀이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참여했다. 윷가락을 던져 모와 윷이 나오면 모두다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이기고 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윷가락을 던지는 그 자체가 즐거웠다. 막걸리도 푸짐하게 갖다놓았다. 내 술같이 이 사람에게도 권하고 저 사람에게도 권하고 그 날만은 술 인심도 푸짐했다. 1등부터 8등까지 상품도 걸었다.

상품이라야 거울•액자•비누 등이 고작이지만 그 어떤 상보다도 기뻤다. 또 보름날은 제일먼저 거름을 논에 져내면 재해를 입지 않고 농사가 잘된다고 어른들은 날이 어둑어둑한 이른 새벽에 거름을 지고 나갔다. 보름 밥을 일찍 먹어야 집에 복이 들고 나락가마니가 늘어난다고 하여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서둘러 오곡밥을 먹었다. 그래서 당시 어머니들은 보름날 앞날 저녁에 나물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 햇살이 퍼지면 동네 꼬마들은 복조리를 들고 집집마다 보름 밥을 얻으러 다녔다. 아이들은 떼를 지어 이 집 저 집으로 뛰어다니며 밥을 얻는 것이 신이 났다. 집집마다 아이들에게 주려고 미리 담아두었던 깨끗한 밥을 한 숟가락씩 골고루 담아 주었다. 동네를 다 돌고 난 아이들의 밥그릇에 오곡밥이 가득 채워졌다.

오후가 되면 달집을 짓기 위해 동네 청년들은 솔가지를 꺾어 나르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 달집은 집채보다 더 크게 만들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 달집에 솔가지를 덮으며 정성을 보탰다. 그리고 달집에 둘러쳐진 줄에 자신의 소원을 적어 달았다. 성급한 사람들은 일찍 달을 보기 위하여 높은 곳으로 올라가 짚단을 세워 놓고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보름달이 얼굴을 내밀며 불을 지폈다. 그리고 보름달을 향해 한해의 소원을 빌었다. 보름달이 떠오르면 동네 공터에 지어놓은 달집에서도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달집이 타는 연기로 가득했다. 마을사람들은 타는 달집가까이에서 보름달을 바라보며 한해의 소원을 정성껏 빌고 또 빌었다. 달집이 다 타고나면 아이들은 고구마를 가져와 구웠다. 그리고 다리미에 콩을 담아와 볶았다.

그렇게 정월도 지나 2월 초하루가 되었다. 농민들에겐 이날부터 한 달간의 긴 방학을 끝내고 본격적인 농사일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또 이날은 바람을 일으키는 풍신인 ‘영등할매’가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세상을 두루 살피고 20일쯤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데 10일에는 ‘상등할매’가, 15일엔 ‘이등할매’가, 20일에는 ‘하등할매’가 올라가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들은 ‘영등할매’가 올라갈 때까지 부엌이나 장독간에 매일 정화수를 갈아 떠놓으며 기도를 올렸다. ‘영등할매갗하늘에서 내려올 때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그 해 태풍이 많이 불어 농사를 망친다고 한다. 그 반대로 딸을 데리고 오면 그 해는 바람이 없고 날씨가 좋아 풍년이 든다고 믿어왔다. 2월초하룻날 바람이 많이 불면 ‘영등할매’가 며느리를 데리고 왔다며 올 농사가 순탄하지 않을 거라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은 2월초하룻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들고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우리 어머니들은 2월 초하룻날 부엌에서 정갈한 음식을 차려놓고 바람을 올렸다. 아이들의 책도 연필도 상에 놓았다. 그 옆에는 낫과 호미 등도 갖다놓았다. 어머니는 ‘영등할매’께 식구들의 생년월일과 이름을 일일이 고했다. 큰아들은 꼭 취직 시험에 합격해달라. 큰딸은 좋은 신랑감을 만나게 해달라. 작은 아들은 대학에 합격하게 해달라며 두 손을 모아 빌었다. 그리고는 액을 물리고 소원성취를 이루도록 소지를 불살라서 영등할매께 올렸다. 2월 초하루가 지나고 나면 보리밭도 매고 겨우내 얼었던 논도 갈아엎어야 했다. 한마디로 고된 농사일이 시작된 것이다. 갓 시집온 며느리들은 한달 동안의 쉬는 날이 끝나 버리고 내일부터 비가 오나 눈이오나 들에 나가 일을 해야 될 것을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이 겁이나 부엌문고리를 잡고 울었다. 사랑방에 앉은 머슴도 한 달간 늘어진 팔자였는데 내일부터 지게 밑에 어깨가 뭉그러질 것을 생각하니 숨이 막힌다. 반쯤 저무는 석양이 약속해 사랑방 기둥을 잡고 운다. 게으른 자식놈은 내일부터 일찍 일어나라고 깨울 아버지 잔소리에 귀가 따가울 것을 생각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다. 아버지는 노는 것도 지겹다며 농사에 필요한 연장을 챙기면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밀양에 사는 김일연(72)씨는 지금도 정월 대보름이 되면 꼭 짚단에 불을 피워 한해의 소원을 빈다고 한다. 20살에 결혼해 10년이 넘도록 아이를 낳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저 년이 들어와 남의 집 삽짝 문을 닫는다고 구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여름에 목이 말라 찬물을 한 사발 마셔도 차가운 배 더 차갑게 한다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밥을 비벼 먹어도 딸을 낳는다고 밥그릇을 빼앗아 버렸다. 해가 갈수록 시어머니의 구박은 더했다. 막걸리라도 한잔하는 날에는 저년 때문에 우리 집은 망했다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는 하루 빨리 집을 나가라고 등을 떠밀며 욕을 만 바가지로 끌어 부었다.

자식을 못 낳는 며느리가 아무리 예쁜 짓을 해도 시어머니 눈에는 행동 하나 하나가 눈엣가시였다. 얼마나 미운지 걸음걸이까지 간섭을 했다. 밥도 부엌에서 먹어야 했다. 날이 새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 딱한 사정은 온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네에서는 달집을 태우며 모든 마을사람들이 나와 그 해의 풍년을 빌었다. 달집을 지어놓고 보름달이 앞산에 얼굴을 내밀면 달집에 불을 지폈다. 달집에 맨 먼저 불을 지피면은 한가지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하여 동네사람들은 서로 먼저 불을 지피려고 했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의 긴급회의까지 열렸다. 먼저 동네 어려운 가정의 고민을 찾아내 달집에 불을 지피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였다. 집집마다 한두 가지 어려움은 다 있었다. 몇 년째 아파 누워있는 사람, 남편이 돈 벌러 나갔다가 소식이 끊긴 사람, 자식이 대학입학시험을 치르는 사람, 사업에 실패한 사람 등 드러 내 놓으니 딱한 사연이 한두 집이 아니었다. 동네 어른들은 이 집 저 집이 쳐다보여 한 집을 뽑기가 매우 난처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자 최종 명단에 오른 사람들이 모두다 나보다 저 새댁이 더 딱하다며 양보를 했다. 2대가 외동에 이번마저 자식이 없으면 큰일난다며 온 동네 사람들이 자신에게 힘을 모아 주었다. 그 해 따라 달집도 평소보다 더 크게 지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달집에다 한가지 소원을 적어 달았다. 해가 기울자 산꼭대기에 지은 달집에서는 달이 떴다며 검은 연기가 여기 저기서 솟아올랐다. 잠시 후 자신도 농악에 맞춰 달집에 불을 지폈다. 순식간에 검은 연기가 하늘 끝까지 이어져 올랐다.

꼭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그렇게 간곡하게 빌고 빌었다. 하늘도 온 동네사람들의 착한 마음에 감동을 했는지 그 다음해에 자식을 낳아 대를 이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의 이름을 보름달, 달집으로 불렀다. 지금 자신의 아들이 40이 넘었지만 달집하면 그 동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