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강테마박물관

박물관 소식

MUSEUM NEWS

겨울철 땔감에 동네 뒷산 ‘벌거숭이’ 되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박물관지킴이
댓글 0건 조회 1,744회 작성일 05-12-06 15:10

본문

겨울철 땔감에 동네 뒷산 ‘벌거숭이’ 되고
집집마다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그 정겹던 풍경



나무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밥 짓고 쇠죽을 끓이는데 귀중한 연료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겨울이면 나무는 가정 난방용으로 제1 필수품 중의 하나였다. 혹한에도 장작 두 묶음으로 군불을 넣으면 방바닥이 지글지글 끓어 언 몸을 가뿐하게 녹여 주었다. 그 당시 겨울철 하루 가정에서 사용되는 나무도 만만찮았다. 겨울 한철이 지나고 나면 민둥산이 하나 더 늘어날 정도로 모든 산이 벌거숭이가 되다시피 했다. 바로 1950~1960년대의 우리 산이 땔감으로 벌거벗은 전형적인 형태라 하겠다.

1970년대 연탄이 시골에도 보편화되면서 나무는 가정에서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게된다. 농촌의 연탄사용으로 황폐한 산도 하루가 다르게 다시 울창해 졌다. 지금 우리나라에 민둥산은 없다. 가는 곳마다 쭉쭉 뻗은 나무들로 들어찼다. 불과 20여 년 만에 몰라보게 변해 버린 것이다. 그 당시 우리 산에 지금처럼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곳은 관광지를 빼놓고는 구경하기 힘들었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농촌인구의 도시 이동은 산을 푸르게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농촌 사람들도 연탄 보일러와 편리한 기름보일러로 난방시설을 바꾸면서 더 이상 나무는 가정에서 연료로서는 필요가 없게 되었다.

30여년 전에만 해도 농한기가 되면 나무를 하는 것이 일이었다. 한가한 겨울철에 일년동안의 땔감을 미리 해두기 위해서였다. 밥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모두 산으로 나섰다. 남자들은 햇살이 막 퍼지기 시작하면 지게를 짊어졌다. 집집마다 거의 비슷한 시간에 지게를 지고 나오다 보니 산 길목에는 순식간에 5~6명이 모여들었다. 남자들은 주로 소나무를 베어와 장작을 패는 무겁고 힘든 땔감을 맡아서 했다. 이른 아침이면 집집마다 장작을 패는 소리가 담을 넘나들었다. 가정에 쓰고 남은 장작은 시장에 내달 팔아 아이들의 옷가지도 샀다.

여자들은 갈퀴로 소나무 밑에 떨어진 가랑잎이나 낙엽을 긁거나 말라비틀어져 죽은 소나무 가지인 삭정이를 주로 했다. 삭정이는 화력이 좋아 금방 김이 나서 밥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당시 여자들은 지게를 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몸보다 큰 나무 뭉치를 머리에 거뜬하게 이고 다녀야 했다. 삭정이가 밥을 짓는 안방용 땔감이었다면 장작은 쇠죽을 끓이는 사랑방용이었다. 겨울방학이 되면 아이들도 3~5명씩 떼를 지어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갔다. 그러다 보니 한 겨울의 동네는 모두다 산으로 가고 거의 텅텅 비었다. 나무 외에는 대체 연료가 없던 시절이라 산에 나무를 몰래 베어가려는 사람과 나무를 지키려는 산 주인과의 신경전도 대단했다.

1960년대 난방 필수품 장작…혹한에도 방바닥 ‘지글지글’

당시 아이들에게 용돈이 궁한 시절이다 보니 방학 때 장작을 팔아 십시일반으로 거둬 과자도 사먹으며 친구들끼리 긴긴 겨울밤을 보냈다. 그러니 당시 아이들이 나무를 몰래 베러가 주인에게 쫓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남의 집에 해놓은 나무를 몰래 져다 팔아먹기도 했다. 김신권(60)씨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산에서 소나무를 몰래 베다가 주인에게 들켜 지게가 박살이 났다고 한다. 당시 동네산은 거의 민둥산이었는데 독하기로 소문난 뒷집의 영감 산만은 소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차 동네아이들이 몰래 베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 독한 영감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서 사는 바람에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소나무를 몰래 베기 위해 아이들은 영감이 산에서 내려가기를 망을 보고 있다가 영감이 산에서 사라지면 재빨리 산으로 올라가 정신 없이 톱질을 했다. 그리고는 나무를 몰래 벤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벤 나무 밑둥치는 흙으로 덮었다. 모두다 한 짐을 끙끙거리며 지고 내려오니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네 형들이 보고 “저놈의 들, 돌 콩 만한 것들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그 영감이 알면 다리몽둥이 부러진다” “차라리 호랑이 코털을 뽑지 거기가 어딘데” 하필 그 독한 영감 산에서 소나무를 베어 오느냐고 걱정스러운 눈치가 역력하다.

다음날 일찍 산에 온 영감은 이상한 느낌에 이리저리 살폈다. 어제까지 곧은 나무가 저만치 서 있어는데 보이지 않는다. “내 눈은 못 속인다. 분명 손을 탔다”며 조용하던 눈에 거센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저쪽에도 눈에 익은 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영감은 소나무를 일일이 세고 다녔기 때문에 소나무 한 그루 없어지면 단번에 알아 차렸다. 그런데도 나무를 벤 흔적은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올빼미 눈을 하고 땅을 살피던 영감은 흙으로 덮어놓은 나무 밑둥치를 보고 “이 죽일 놈들” 곧고 좋은 나무만 다 베어갔다고 반드시 잡아 나무 값을 백 배로 물리겠다고 펄쩍 뛰었다.

영감은 나무를 찾겠다고 동네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는 밤에 잠도 안자고 나무 도둑질을 하러 다닌다고 동네 아래위를 오르내리면 잔뜩 공포분위기를 만들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평생 그 흔한 장에도 한번 안가는 영감이 오늘은 부산의 사돈집 아들 잔치에 간다고 구두약을 빌려달라고 앞집과 뒷집을 쏘아 다녔다. 아이들은 절호의 기회가 왔다며 암호를 주고받으며 지게를 지고 모여들었다. 5~6명이 떼를 지어 산으로 몰려가 느긋하게 소나무를 베었다. 오늘은 영감이 부산에 갔겠다 들킬 염려도 없었다. 친구간에 서로 좋은 나무를 고른다고 경쟁이 붙어 산 아래위로 토끼처럼 뛰어다녔다. 여기 저기서 톱으로 나무 자르는 소리와 나무가 넘어지는 소리가 산골짜기에 가득했다.

나무를 베는데 정신이 팔려 사람이 오는지 가는지도 몰랐다. 갑자기 산이 부산해 나무를 베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이게 어찌된 일인지 부산에 있어야 할 영감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죽었다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마나 성미가 급하던지 영감은 작대기부터 먼저 집어 던졌다. 그냥 있다가는 맞아 죽을 판이었다.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모두다 지게를 그대로 놓아두고 비탈진 산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도망을 쳤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영감은 쭉쭉 곧은 나무들이 쓰러져 나뒹구는 것을 보고 눈에 호랑이 불을 열 두 번을 켰다 껐다 했다.

나도 굽은 나무만 베어 썼는데 이 놈들이 산을 다 망쳐 놓았다며 산이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는 도망가면서 놔두고 간 지게를 한곳에 모아 놓고 이리 던지고 저리 던졌다. 고함을 한번 지르고는 지게 끈을 싹둑 잘랐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도끼 자루를 집어 들더니만 장작을 패듯이 지게 목발 5~6개를 단숨에 부숴버렸다.

김씨는 부서진 지게를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아무리 소나무를 몰래 베었지만 지게까지 부쉈다는 것은 너무하다 싶었다. 그 길로 산산조각이 난 지게가지를 들고 영감쟁이 집에 우르르 몰려가 물어 달라고 골목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 바람에 동네에서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철없는 아이들이 나무 몇 그루 벴다고 지게까지 부쉈다는 것은 너무 하다.” “남의 산에 나무를 베면 안되지” 동네 여론도 양분되었다. “물어달라” “못 물어준다” “나무부터 물어내라” 나중에는 동네 어른들 싸움으로 번졌다. 그 독한 영감도 지게를 부순 것이 죄가 되어 나무의 나자도 못 꺼내고 끙끙 앓고 있었다. 지금 같으면 당장 나무 절도죄로 감옥에 갈 일이지만 그 시절은 도둑이 오히려 지게를 물어내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도 시골 인심이었다.

창원에 사는 김국권(49)씨는 중학교 3년 겨울방학 때 친구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산불을 냈다고 한다. 그 날 날씨가 매우 추웠지만 양지바른 곳이라 별로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나무를 한참 하다가 보니 이마에는 땀이 송송 맺혔다. 힘들면 친구와 마른 풀 위에 벌렁 누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마음까지 시원해졌다. 주위는 새들의 숨소리 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했고 따뜻한 햇볕에 눈이 저절로 감겼다. 갑자기 몸에 찬 기운이 느껴져 눈을 뜨니 해가 상당히 기울어 져 있었다.

몸이 떨려 주위의 낙엽을 모아 불을 놓았다. 때마침 바람이 세차게 불어 순식간에 마른 풀잎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불어온 바람을 타고 불은 세차게 번져 나갈 태세였다. 친구와 둘이서 소나무 가지를 꺾어 죽을 힘을 다해 불을 껐지만 소나무 가지가 한번 내리칠 때마다 더 번져 나갔다. 온몸에 진땀이 흘렀다. 도저히 둘이서는 불을 끌 수가 없었다.

너무 겁이나 정신 없이 불을 끄고 있는 친구를 보고 “야! 도망가자”고 제의를 해보지만 친구는 이 불을 못 끄면 “지서에 잡혀간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불을 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둘이서 온몸을 던져 불 위에 데굴데굴 굴렀다. 신기하게도 한번 굴러간 자리는 불이 완전히 꺼졌다. 친구는 저쪽에서 자신은 이쪽에서 정신 없이 굴렀다. 한참을 구르고 나니 불은 다 꺼졌다. 치아만 하얗고 온몸은 숯 검둥이가 되어있었다. 완전히 바비큐였다. 그래도 불을 껐다는 안도감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불 이야기만 나오면 그때 일을 자랑스럽게 쏘아 댄다고 한다. 나무로 밥짓고 방을 따뜻하게 하던 시절 삶이 힘들고 다소 불편했지만 집집마다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그 정겹던 풍경만큼 그 시절 우리 삶도 정겹고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