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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 이발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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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물관지킴이
댓글 0건 조회 2,442회 작성일 05-12-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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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 이발소 풍경
바리캉 하나로 여러 사람이 머리를 깎다보니...



미닫이문에는 페인트로 이발소라고 쓴 큼직한 글씨가 촌스럽다 못해 정겹다. 문을 밀고 들어서면 난로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난다. 이삭줍기, 만종, 푸른 초원이 그려진 액자가 평화롭기만 하다. 그 옆으로는 이용사 면허증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선반에는 바리캉, 면도칼, 가위, 쇠 빗이 가지런히 놓였다. 그리고 한쪽모퉁이 선반에는 수건이 차곡차곡 쌓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난로 옆에는 장작이 수북하다. 대형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왕 촌놈이다.

난로 위의 백 솥에는 보글보글 물이 끓고있다. 긴 나무의자에는 머리가 덥수룩한 아이들이 쪼르르 앉아 차례가 지겨운지 진절머리를 낸다. 앞쪽에 앉은 어른들은 세상 이야기로 정신이 없다. 아랫마을 누구 집에 큰아들이 장가를 든다. 지난 장날 소 값이 크게 떨어졌다. 근래 마을의 일들이 낱낱이 쏟아졌다. 한마디로 이발소는 동네 새로운 소식의 진원지였다. 한 사흘만 이발소에 들락거리면 온 동네의 대소사를 훤히 알 수 있었다. 이발소 주인은 머리를 깎으려 온 동네 사람들이 한 이야기를 주어 들어서 누구 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동네 돌아가는 사정에 밝았다.

얼굴에 비누 거품을 양껏 바르고 면도를 하려 의자에 누운 털보 아저씨는 그새 잠이 들었는지 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이발사 아저씨의 손에 잡힌 투박한 면도칼이 위에서 아래로 한번 지나갈 때마다 검은 얼굴은 훤해졌다. 이발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면도칼을 이것저것 바꾸어 본다. 그리고도 만족스럽지 못 한지 혼자서 중얼중얼 한다. 수염이 고래 심지 같아서 면도칼이 쉽게 건너가지 않는 다는 불만의 표시였다. 그러다가 의자 옆에 달린 가죽띠에 무뎌진 칼날을 세우려 면도칼을 썩 썩 문지른다.

그리고는 바짝 선 칼날을 노려보더니만 털보 아저씨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다시 밀기 시작한다. 비누통의 솔을 꺼내 난로 연기통에 두 번 문지른다. 난로에 문질러 따뜻해진 솔이 털보 영감의 얼굴에 풍경화를 그리듯이 쭉 내려가자 비누 거품이 일며 얼굴에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오르기 시작한다. 한잠이 들었던 털보 영감도 얼굴이 따끈한데 놀라 눈을 번쩍 뜬다. 이발사를 향하여 얼굴 데이겠다고 점잖게 한마디한다. 이발사는 엄살도 심하다며 피식 웃는다. 저쪽에는 이발의자의 팔 걸이에 빨래판을 걸쳐놓고 꼬마가 머리를 깎고 있다. 언제 씻었는지 땟물이 조르르 흐르는 나일론 덮개를 아이에게 둘러 씌웠다. 바리캉도 성능이 좋은 것은 어른들 용이었고 아이들 머리를 깎는 것은 항상 작동이 잘 안 되는 고물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생 머리를 뽑기 일쑤였다. 기계가 지나갈 때마다 머리가 따끔거려서 아이들은 쩔쩔 맨다. 연방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찔끔 찔끔 쏟아냈다. 그 때마다 이발사는 바리캉을 한두 번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머리에 갔다 댔다.

고친 바리캉은 금세 머리카락이 끼여 오도 가도 못하고 머리 중앙에 서 버렸다. 이발사는 바리캉이 찍찍 하다며 기름을 들이붓는다. 기름은 아이의 머리까지 넘쳐 미끌미끌하다. 이발사도 생 머리가 뽑혀 아이가 괴로운 줄 알고 있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머리를 깎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어른들이“아 머리 다 뽑는다”고 한마디 거들면은 그때서야 어제까지만 해도 잘 되었는데… 바리캉에 기름치고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고 풀고 야단이다. 한마디로 머리를 깎는 것이 아니라 생 머리를 뜯고 있었다. 이처럼 머리를 깎을 때마다 고장난 바리캉에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아팠지만 아이들은 주위의 분위기에 눌려 아야 소리도 못하고 혼자만 끙끙 앓았다. 바리캉하나로 여러 사람이 머리를 깎다보니 머리에 기계충이라는 피부병을 옮기기도 예사였다. 깔끔하던 머리가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은 다음 부스럼이 덕지덕지 났다. 심할 때는 온 동네 아이들의 머리가 부스럼 천국이 되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이지만 당시에 그런 풍경이 흔하다 보니 뭐라 할 일도 아니었다. 설사 이발소에 가서 따져봤자 입만 아팠다.“싫으면 오지 마라 하는 식이었다” 괜히 한마디했다가는 동네 하나뿐인 이발소에 미움을 받아 다음에는 이발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한 동네에 이발소가 한곳뿐이다 보니 그 배짱도 만만찮았다. 손님에 대한 친절은 엉망이었다. 이발사는 대부분 무면허였으며 빌린 면허증을 벽에 걸어놓았다. 면허를 가진 사람은 대부분 이발 이자도 모르는 돈께나 가진 유지들이었다.

머리가 마음에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 이었다. 이발사가 깎아 주는 것이 답이었다. 그러다 보니 명절을 한번 지나고 나면 온 동네 사람들의 머리 모형이 똑 같았다. 이발한 모양만 보고도 어디 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발사라 해봤자 겨우 바리캉을 겨우 들 줄 알아서니 말이다.

마산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는 이종만(64)씨는 이발소에 갈 때마다 30여년 전이 떠오른다고 한다. 자신은 그 때가지만 해도 이발소 하면은 무뚝뚝한 남자 이발사가 머리를 깎아주는 곳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예쁜 여자 면도사가 수염도 깎아주고 안마도 해주는 곳이 있다하여 친구들을 따라 그 이발소에 갔는데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발소에는 여자 면도사가 4∼5명 정도 있었고 시설이 너무 깨끗했다. 양복을 입은 신사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자신은 평소 두 달에 한번 이발소에 갔지만 그 뒤로는 한 달이 멀다하고 그 이발소에 드나들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자신의 마누라가 뒤를 밟는 바람에 우세를 톡톡히 했다고 한다. 자신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면도사들이 어깨를 주물러 주자 너무 시원해 마음 푹 놓고 지그시 눈을 감고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이발소 밖에서 망을 보고 있던 마누라는 남편이고 뭐고 오늘은 초상날 이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7~8개가 늘어선 이발의자에는 면도를 받는 사람에서부터 각양각색이었다. 저 쪽 구석에 안면이 사람이 번쩍 눈에 띄었다. 얼굴에 허연 수건을 덮어쓰고 “아이구 시원하다” “아이구 시원하다”“김양손이 약손이다”며 자신의 마누라가 와 쳐다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거드름을 피웠다. 그리고는“여기가 아프다” 이 쪽을 주물러라 저쪽을 주물러라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면도사 아가씨들은 “사장님 어깨가 단단히 뭉쳤다”며 간지럼을 피운다. 한참을 보고 있던 마누라는“잘 놀고 있네”하더니만“똥물을 퍼는 사람도 사장이냐” 사장은 무슨 얼어죽을 사장님하며 면도사 아가씨를 왈칵 밀쳐내고 자신의 남편의 어깨를 사정없이 팍팍 주물렀다.

자신의 마누라가 어깨를 주무는 줄도 모르고“아 시원하다”그래그래 더 주물러라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독이 머리끝까지 오른 자신의 마누라는 더 세게 어깨를 팍팍 주물렀다. 손놀림이 이상했지만 별 일이야 있겠나 싶어 김양아 좀 살살 주물러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김양 좋아하네”말을 받으며 손놀림이 더 거칠어 졌다. 완전히 폭력으로 돌변해 버렸다. 그 때까지만 해도 팁을 안 줘 아가씨들이 화가 나서 그런 줄 알고 큰 마음먹고 천원짜리를 한 장 뺐다.“아따 팁까지 사장님 멋져 …돈이 썩어 자빠졌구먼” 하며 잽싸게 돈을 빼앗아 가버렸다. 낯익은 목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뜨니 자신의 마누라가 독사 눈을 하고 노려보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눈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며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고 한다.

밀양에 사는 이근호(64)씨도 설날이라며 머리를 깎는 아이들을 보며 옛날이 불현듯 떠오른다고 한다. 자신의 고향은 심심 산골이었는데 동네 이발소라고는 한곳뿐이었다. 머리를 깎을 돈조차 없어 항상 덥수룩하게 해 가지고 학교에 다녔다. 그렇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단정하게 새해를 맞기 위해 이발소는 사람들로 터져 나갔다. 그 소중한 이발소가 누군가 무면허 이발사가 이발을 한다고 진정을 넣는 바람에 대목을 앞두고 문을 닫아버렸다. 아무리 살림이 어려워도 머리를 단정하게 깎고 새해를 맞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었는데 머리를 깎을 수 없으니 동네는 난리가 났다. 성급한 집에서는 아이들의 머리를 가위로 잘라 쥐가 파먹은 것처럼 울퉁불퉁했다.

아이들이야 그렇게 라도 해서 설을 셀 수 있었지만 어른들은 여간 낭패가 아니었다. 마을의 이장을 비롯해 반장들이 모여서 연일 대책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모두다 이 꼴로는 설을 셀 수 없다며 면사무소로 몰려갔다. 면장님께 사정 사정을 해 그 해 대목에만 이발소 문을 열도록 허락을 받았다. 설날까지는 도저히 그 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깎을 수 가 없었다. 동네에 바리캉만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다 나와 머리를 깎았다. 밤에는 등불을 밝혀놓고 꼬박 날을 새웠다. 그래도 머리를 다 못 깎아 읍내 이발사를 급히 데려와 모두다 설을 셌다고 한다. 지금이야 흔한 것이 미장원과 이발소이지만 30여년 전 그 시절 시골에서는 이발소도 귀했지만 어려운 형편에 머리 한번 깎는 것도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