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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자식 업고 회사 앞에서 죽친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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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물관지킴이
댓글 0건 조회 3,230회 작성일 05-12-0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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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자식 업고 회사 앞에서 죽친 아내



돈이 귀하던 시절 직장인들이 대포 한잔하기도 쉽지 않았다. 월급이라야 2∼3만원 정도. 그 돈으로는 한달 밥 먹고살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상여금을 듬뿍 주는 것도 아니었다. 설 팔월에 쥐꼬리만한 떡값이 전부였다. 지금 그 돈 으르는 있는 사람 한끼 밥값도 안되겠지만 당시에는 온 식구가 한 달을 먹고살고 아이들 학교도 보내고 저축도 했다. 물론 지금처럼 사시사철 옷을 사 입지 않았다. 옷 한 벌 사면 닳아 떨어질 때까지 꿰매 입고 또 꿰매 입었다. 고기 국물도 할아버지•할머니 생신날인 일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웬만하게 몸이 아파도 약 한 첩 사먹는 것이 아까워 이마에 수건을 동여매고 버텨냈다. 그렇게 아껴 쓰지 않고서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모두 기다리고 기다린 월급날은 왔는데

그시절 여자들은 돈을 벌려고 해도 돈을 벌 곳이 없었다. 그래서 오직 남편 월급만 바로 보고 살았다. 방세에서부터 연탄•큰아들 회비까지 돈 들어 갈곳이 줄줄이 대기해 있어 온 가족이 아버지의 월급날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월급날은 아이들에게도 신나는 하루였다. 그 날은 특별 식으로 물 넘은 갈치라도 밥상에 올라왔고 운이 좋으면 사탕 쪼가리라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월급날을 기다리는 것은 가족만이 아니었다. 도로 옆 즐비하게 늘어선 대포집도 마찬가지였다. 한달 내내 장부에 달아 놓은 외상값을 받기 위해서였다. 모처럼 목돈을 손에 쥘 수 있어 대포 집 아지매도 그 날만은 하루종일 싱글벙글 했다. 외상장부에 가위표를 쭉 긋고 나면 외상값을 갚아 고맙다며 막걸리 한 사발을 푹 떠 권했다.

아내의 초라한 몰골에 남편은 질겁하고

학교도 밀린 회비가 들어와 선생님의 고민이 단숨에 해결됐다. 가계마다 매출이 껑충 뛰었다. 술집도 더욱 활기가 넘쳤다. 그래서 인근 공장의 월급날은 모두다 기다리는 날이었다. 봉급 봉투를 마누라에게 갔다 바치고 나면 직장인들의 주머니는 늘 빈 털털이였다. 그러다 보니 술 한잔 먹기도 쉽지 않았다. 출출한 배를 움켜잡고 무거운 발걸음을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막걸리 한잔이 간절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듯이 퇴근 길목의 대포 집은 기어이 애주가들의 발걸음을 잡아 당겼다. 그 시절은 술집 인심도 좋았다. 안면만 트면 외상 술도 쉽게 먹을 수 있었다. 계산은 한달 후 봉급 때였다. 그래서 두툼한 술집의 외상 장부는 늘 빼곡했다.

도시에 어둠이 짙어들면 대포 집마다 하루의 피곤함을 달래기 위하여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들었다. 단돈 몇 백 원이면 서너 명은 기분 좋게 한잔 할 수 있었다. 안주라야 소금에다 짠 김치 쪼가리가 전부지만 그래도 그 술맛은 일품이었다. 철철 넘치는 술잔에 정도 철철 넘쳐흘렀다.“돈벼락을 맞아라”술잔을 마주 치며 한껏 기세를 올렸다. 술잔이 돌고 도는 것만큼 그들의 우정도 더욱 깊어갔다.

거나하게 취하면 젓가락 장단으로 한 곡을 뽑아 돌렸다. 하루 하루가 고달픈 삶이다 보니 그들은 신나게 불렀던 노래 가락이지만 창문너머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는 애절했다. 바삐 골목길을 빠져나가던 사람들도 그 노래 가락에 가슴이 뭉클해 발길을 늦추고 흥얼거렸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 둘 꺼져 가면은 젓가락 장단을 타고 흘러 넘치던 노래 소리도 희미해 졌다. 오늘도 외상장부는 꼬불꼬불한 글씨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비록 외상 술이었지만 골목길을 따라 오르는 발걸음도 한결 가뿐했다. 그 순간만은 모든 근심과 걱정도 없었다. 오랜만에 가슴은 탁 트여 노래가 절로 나왔다. 긴 골목길이 끝날 때가지 온 동네가 쩌렁쩌렁 하도록 울려 퍼졌지만 그 노래 가락에는 서민들의 고단함이 물씬 풍겨났다. 그 시절 적은 외상은 삶의 미덕이었지만 너무 지나쳐 사회 문제가 된 것도 심심찮게 있었다.

창원에서 사는 최순희(63)씨는 남편이 노름을 해 월급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마다 남편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봉급이 나오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리 쉬었다. 처음에는 그런 줄 알고 믿었지만 갈수록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행동이 수상해 회사에 전화를 해보니 멀쩡한 거짓말이었다. 몇 달째 봉급을 안 가지고 오니 집안 살림이 말이 아니었다. 당장 굶을 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퇴근하면 싸우기 일쑤였다. 그래봤자 남편은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젖먹이를 두고 자신이 돈 벌로 나설 수도 없었다. 설사 젖먹이 아이가 없다고 해도 당시에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돈은 없고 아이들은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 미칠 지경이었다. 더 괴로운 것은 아이들이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짐승보다도 못한 저 인간 정신이 번쩍 들도록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며 오징어 씹듯이 자근자근 씹어댔다.“그래 네놈을 경상남도 우세를 시켜놓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월급날 큰마음을 먹고 회사 정문 앞에서 시위를 위해 작은 아이는 엎고 큰아이는 걸려 찾아갔지만 도저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 정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남편이 나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바쁘게 나오던 남편은 힐끔 쳐다보고는“아이고 저 독사 같은 인간이…금방 얼굴이 똥색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쪽 팔린다는 듯이 부리나케 달아 빼버렸다.

‘오늘은 술값 받는 날’ 대포집 주인 ‘희색’

머리까지 치솟은 성은 풀 데는 없고 집에 와서 마른 명태만 가루가 나도록 다듬이방망이로 두드려 팼다고 한다. 다음 월급날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정문 앞에 서 있었다. 혹시나 마누라와 자식가 왔을까봐 도둑고양이처럼 눈을 살살 돌리며 나오다가 아이를 엎고 버티고 선 마누라를 보고는 하늘같은 남편을 뭐로 보고 설치느냐며 바늘구멍 만한 눈에 쌍심지를 켰다. 그리고는 죽일 듯이 인상을 두 번 팍팍 쓰고는 회사로 도로 들어 가버렸다.“이 웬 수 같은 인간, 그래도 창피스러운 줄은 아는 모양이지 제발 사람되거라”며 이빨을 갈고 있었다.

그때 저 쪽에서 자신처럼 남편을 쫓아온 한 여자가 봉급 봉투를 내 놔 라며 남편과 물고 뜯고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남세스럽게 회사까지 찾아 왔다고 손바닥이 아래위를 오르내렸다. 그때마다 마누라도 지지 않았다. 사정없이 남자의 얼굴을 할퀴었다. 마누라는 악을 썼다.“저승사자는 뭐하고 저놈을 안 잡아가느냐”고 땅이 꺼지도록 독을 피웠다. 얼마나 사는 것이 절박했는지 남의 눈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결국은 남편의 수중에 있는 봉급 봉투를 빼앗아 냈다.

그것을 쳐다본 자신도 용기가 생겼다. 완전히 우세를 시키지 않고는 우리집 저 인간도 구제 불능이다. 그래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해보자며 벼르고 또 별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급날 네 살 큰 아이는 아예 바지를 입히지 않았다. 자신은 떨어져 꿰맨 몸빼를 입었다. 그리고는“상철이 아버지 생활비를 달라 배고파서 못살겠다”고 달력 뒷면에 크레용으로 큼직하게 적어 회사의 정문 들고 서있었다. 주위의 기세에 눌린 큰 아이는 불알이 덜렁거리며 울고 섰다. 등에 엎은 작은아이도 덩달아 땡 고함을 지르며 울어댔다. 늘어선 식구들의 초라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평생 밥그릇 들고 동냥 을 다니는 것보다는 한번 우세를 하는 것이 낫겠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그 초라한 몰골에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무슨 대단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고개를 내밀어 완전히 동물원 원숭이 신세가 되었다. 우리회사에 상철이 아버지가 누고… 저희들끼리 쑥덕거렸다. 그리고는 허우대만 멀쩡한 놈이 마누라와 자식 꼴이 저게 뭐고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남편에게 욕을 끌어 부었다.

바깥의 비상사태를 알고 있는지 그때까지 자신의 남편은 꼴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 중년의 신사가 다가와 네 아버지 이름은 하며 물었다. 그리고는 단번에 주위를 보고 봐라 생산과에 누구를 데려 오라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 사람은 회사의 생산 부장이었다.

정문에 끌려 나온 자신의 남편은 마누라와 자식의 초라한 몰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생산부장은 사무실에 불러 놓고 월급은 어디에 썼느냐. 처자식 안 돌보려면 장가는 왜 갔느냐며 눈물이 찔끔 나도록 닦아 세웠다. 회사의 배려로 그 뒤로는 월급날만 되면 자신이 직접 회사에 가서 남편의 봉급을 받아왔다고 한다. 그 시절 월급날이 되면 회사 정문 앞에는 자식을 엎은 마누라에서부터 외상값을 받으러 온 술집 아가씨까지 지키고 섰을 정도로 한바탕 난리가 심심찮게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