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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유회 가는 날… “맙소사 내 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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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물관지킴이
댓글 0건 조회 3,081회 작성일 05-12-0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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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유회 가는 날… “맙소사 내 팬티”



일년 내내 일만하던 30여 년전. 달력에는 빨간 날이 꼬박꼬박 돌아왔지만 특근이다 뭐다 하여 한 달에 한번도 못 쉬는 날이 많았다. 잔업은 필수였고 철야도 밥먹듯이 했다. 8시간 일을 해 가지고는 돈이 적어 밥 먹고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조장이나 반장의 눈에 나면 시켜 주지도 않았다. 잔업 한시간 더 하기 위해서는 조장이나 반장에게 온갖 미소 작전을 펼쳐야 했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퇴근해 잠깐 눈을 붙이면 출근시간이었다. 자식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들었다. 새근새근 자는 아들의 이마에 손 한 번 대보고 다시 출근길을 서둘러야 했다. 아침에 별을 보고 출근해 별을 보고 퇴근한다는 말도 그때 생겨났다. 기계 앞에 앉으면 한 눈 팔 겨를도 없었다. 매일 새벽에 나가니 하루종일 햇볕 한번 못 보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어쩌다 일요일 하루 쉬는 날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토요일 늦은 퇴근길이지만 내일 하루 쉰다는 기분에 발걸음이 날아 갈 듯 했다. 통행금지 시간이 한 두시간 남았지만 직장 동료들과 대포 한잔을 하면 그 맛은 꿀맛이었다.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릴까 말까 그 긴박함 속에서 마시는 그 술맛은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만이 알뿐이다. 이처럼 바쁘게 살다보니 당시 직장인들은 꽃이 피었는지 단풍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추우면 겨울, 더우면 여름이구나 하고 느낄 뿐이었다. 그나마 바깥 구경을 할 수 있는 것은 일년에 한두 번 있는 직장 야유회였다. 모처럼 일에서 해방되는 것도 즐거웠지만 완행열차를 타고 떠난다는 것이 더욱 가슴 설레게 했다.

일년에 한번 놀러가는 날…넥타이도 걸치고

기다리고 기다리든 야유회 날, 갸름 옷으로 아끼고 아꼈든 옷도 내 입었다. 머리는 기름을 팍팍 발랐다. 남자들은 넥타까지 맸다. 아가씨들도 나팔 바지에 주름을 칼 같이 세웠다. 야유회 때 넥타이 매는 것은 지금 입장에서 보면 웃음 날 일이지만 당시는 놀이가 연례 행사다 보니 멋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야유회 가는 날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가는 아마 선보러 가느냐고 팔푼이 취급을 받을게 뻔했다. 당시 밀양의 솔밭이나 삼랑진 낙동•하동 송림 등은 일요일이면 놀이 온 사람들로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는 지금처럼 노래방도 없었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어쩌다 기분이 좋으면 대포 잔을 기울이면서 젓가락 장단을 맞추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젓가락 장단에 타고 넘는 재미도 상당했다. 어둠이 깔리면은 서민들의 고단함을 달래던 젓가락 장단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시절은 지금의 노래방처럼 흔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노래 한 곡 부르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휴일이면 유원지에는 통기타 소리와 손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가 가득했다. 삥 둘러앉아 게임을 하고 놀다가 디스코 판을 벌이는 것은 필수였다. 해가 기울어 가면 여기 저기서 손 전축을 틀어놓고 엉덩이를 흔들어 댔다. 지금은 고기를 구워먹고 고스톱 판을 벌이는 것에 비하면 그 시절의 또 다른 놀이 문화였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노래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트 클럽은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야외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울산에 사는 김태성(49)씨는 야유회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돌아오다가 70대 노인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 열차 안에서 통기타를 치며 삼삼오오 모여 신나게 놀았다. 객실마다 야유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 술잔을 기울이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객실로 왔다 갔다 하는 차장은 그 생활에 익숙한 탓인지 적극적인 제지를 하지 않았다. 가끔씩 “조금 조용히 해 갑시다”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전부였다. 소주라도 한잔 권하면 지금 근무중인데 먹으면 안 된다고 쭉 빼다가 못이긴 척 하고 받아 마셨다. 지나 칠 때마다 한잔씩 얻어먹다 보니 얼굴이 불그스레하다.

놀이 뒤끝이라 여기저기서 흥이 올라 있었다. 손 전축의 디스코에 맞춰 흥건한 춤판이 벌어졌다. 그때 별안간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놈들아“노세~노세 젊어서 놀아라 /늙어지면 못 논다”지금은 그런 노래를 부를 때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 왜놈에게 나라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 남북으로 두 동강이 났는데‘젊어서 놀아’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느냐고 길길이 설쳤다.

젊은 놈들이 정신이 빠져도 한참 빠졌다고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늙어서 곧 죽을 몸이지만 너희 놈들은 나라를 안 빼 앗기고 잘 살아야 된다. 힘없으면 또 언제 나라를 빼앗길지 모른다. 열심히 일해서 힘을 키우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 흥청망청 하던 기차 안은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여러분들이 부를 노래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그런 노래라는 것이다. 젊어서는 뼈가 부러지도록 일을 하고 늙어서 놀아야 된다. 우리는 나라 빼앗기고 꿈도 희망도 없이 이렇게 늙어 버렸다. 남의 나라 전쟁에 끌려가 대부분 총알받이가 되고 나처럼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며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젊은이가 노는 나라는 망한다” 못난 할아버지•아버지 세대 이어받지 말고 무슨 일이든지 해서 나라의 힘을 키우라는 것이었다.

손전축에 젓가락 장단•디스코는 필수코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새마을 노래를 앞에서 선창하고 열차 안의 승객들이 따라 부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꼭 초등학교 음악시간 같았다. 그 노인의 태도가 너무나 진지했기 때문에 누구하나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이 모두다 새마을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열차 안이 떠나 갈 정도로 불렀다. 차표 개찰을 온 차장도 180도로 돌변한 분위기에 입을 딱 벌리고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는 젊은이들 열심히 일해 잘 살아 봅시다 라는 말을 끝으로 그 노인은 열차에서 멀어져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라 잃은 한이 얼마나 맺혔으면 열차 안에서 젊은이들을 잡고 새마을 노래를 부르게 했는지 지금도 그때의 순간이 눈에 선하다고 하다.

마산에 사는 김정구(49)씨는 야유회 이야기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한다. 화근은 야유회 가는 날 늦잠을 잤기 때문이었다. 눈을 번쩍 뜨니 기차 출발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빨랫줄에 널어놓은 팬티를 잽싸게 가져와 입고 역으로 내달렸다. 역에 도착하니 반장은 젊은 놈이 늦게 온다고 눈에 쌍심지를 켰다 껐다 했다. 그런데 급하게 입은 팬티가 이상하게도 쪼였다. 화장실에 가서 바지를 내리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여자 팬티를 입고 있었던 것이었다.‘아이고 맙소사’급하게 서두르는 바람에 옆방 아가씨 팬티를 걷어 입은 것이었다. 세계 토픽에 날 사건에 식은땀이 솟아올랐다. 하필 그 중요한 순간에 매구 같은 친구 놈이 나타난 것이었다. “야 임마 너 가시나 반주 아이갚 누나도 없는 놈이 여자 반주를 입었다는데 통 이해가 안 가는지 어리둥절했다. 엉겁결염야 이거 어쩌면 좋으냐”고 아침의 일들을 사실대로 이야기 해 버렸다. 그 친구는 배를 잡고 웃더니만 “살다가 때 만났다, 야 임마 하늘의 옥황상제가 굽어살핀 것이다” 아무 한 테나 그런 복은 주지 않는다고 놀려댔다. 그리고는 너는 복도 많지 그 천연기념물이 너한테 굴러들었으니 말이다.

아이고 네가 옆방 아가씨 팬티를 입었는데 내가 더 미치겠다. 생각만 해도 왠지 내 가슴 벅차 뜨끈뜨끈 한 것이 가슴이 짜르르 해 터질 것만 같다고 계속 방정을 떨었다. 그 소식은 순식간에 옆으로 퍼져 만나는 사람마다 “오늘 완전히 팔자 고쳤다”며 남의 속도 모르고 의미 심장한 웃음을 보냈다. 나는 복도 문출래 복이지 여자 양말도 한번도 못 만져 봤는데 너는 어쩌면 그런 대 횡재를 하느냐며 만나는 친구들마다 비실비실 웃어댔다. 아무리 실수라지만 옆방아가씨에게 들키는 날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밥맛이 딱 떨어졌다. 하루종일 옆방 아가씨가 여우로 보였다가 성난 사자로 보였다가 눈에 아롱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야유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친구 놈들은 얄밉게도 히죽거리며 따라 붙었다. 팬티를 벗자마자 무슨 금테라도 되듯이 이놈도 저놈도 한번씩 입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그리고는 서로 쳐다보고 깔깔거렸다. 느닷없이 아침에 사라진 팬티 그 옆방아가씨는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행방을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