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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물을 말로 덮어쓰게 해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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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물관지킴이
댓글 0건 조회 2,603회 작성일 05-12-0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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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물을 말로 덮어쓰게 해주소”
급속한 공업화로 돈독 오른 졸부 욕심은 끝이 없고



오 천년의 가난을 몰아내자. 농업만으로는 잘 살수 없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오직 잘 살수 있는 길은 공장을 지어 수출을 하는 길뿐이다. 숨죽였던 대지 위에 공업입국의 요란한 구호가 메아리 쳤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노래 소리를 타고 곳곳에서 도로를 뚫고 공단을 세우느라 밤낮이 없었다. 하룻밤 사이에 앞산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공장이 빠르게 들어섰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갑자기 유흥업소가 즐비했다. 캄캄한 밤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며 대낮보다 더 밝았다. 밤이면 청승스러울 정도로 울어대던 개구리 소리도 뚝 그쳤다. 눈 깜박 할 사이에 강산이 서 너 번 변할 정도로 달라진 것이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은 도로 혁명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 없이는 공업입국도 없다며 본격적인 도로 건설에 착수했다.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전국은 일일생활권으로 당겨졌다.  소 구루마 한 대도 간신히 다니던 도로는 집채만한 트럭 두 대가 내달렸다. 지금은 8차로도 좁아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길게 포장된 4차로만 봐도 너무 너무 넓다고 모두다 감탄했다. 누가 다니려고 저 넓은 길을 닦아 놓느냐며 사람마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쭉 쭉 뻗은 도로를 바라보며 노인들은 “세상이 개벽을 했다. 이 좋은 시절 신나게 한번 못살아 보고 가는 것이 서럽다”며 곧잘 신세타령도 했다.

막상 길은 넓게 닦아 놓았지만 다니는 차가 없었다. 초창기에는 공장으로 자재를 싣고 가는 트럭과 가끔 갈 길이 바쁜 사람이 타고 가는 택시가 전부였다. 어쩌다 서울서 오신 돈 많은 사장님이 까만 승용차를 타고 4차로를 달리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아스팔트 위로 달려가는 그 자가용이 신기해 모두다 하던 일을 멈추고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였다. 이처럼 도로가 뚫리면서 공장을 세우는 일은 가속도가 붙었다.

이제는 수출이다. 요란한 기계소리가 본격적으로 울리면서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날만 새면 이삿짐 보따리를 차에 싣고 떠나는 것이 섭섭해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었다. 이삿짐이래야 이불 보따리와 솥 단지가 전부였다. 하루가 다르게 비어 가는 동네를 바라보며 남은 사람들의 마음도 착잡했다. 농사를 안 짓고는 하루도 살수 없다며 농사에 목을 매달았던 그 사람들의 큰 반란은 단번에 산업의 지형마저 바꾸어 버렸다.

돈벌어 폼 나게 살아보겠다고 매일 사람들이 몰려오니 도시의 집 값과 땅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그 곳에는 전국에서 내로라 하는 투기꾼들이 몰려들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곳곳에서 졸부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금 바가지에 어쩔 줄을 몰랐다. 자고 나면 2층집이 빌딩이 되어 있었다. 돈이 펑펑 쏟아지자 내가 수 년전 제비가 흥부네 집에 물어다준 박씨를 훔쳐 나오다가 그만 흥부 놈에게 들켜 똥물을 뒤집어쓰는 꿈을 꿨는데 오늘에야 “돈벼락을 맞았다”며 횡설수설 해댔다.

그리고는 “이 돈을 다 어디 숨기노…이 돈을 다 어디 숨기노”하며 돈을 들고 벌벌 떨며 집안 구석구석을 뛰어 다녔다. 마침 겁이 없는 파리가 돈 자루에 내려앉자 돈 숨긴 곳을 본 놈은 네 놈 밖에 없다. 네 놈을 살려두면 이 세상에 하나 뿐인 천기가 누설된다며 들고 있던 빗자루로 사정없이 내리쳐 버린다. 돈맛을 들인 졸부는 오늘 저녁에는 똥물을 아예 통째로 덮어쓰는 꿈을 꾸게 해달라고 천지신명을 찾아 댔다. 돈 버는 데는 똥 꿈이 최고다 백 번이라도 좋으니 많이만 뒤집어쓰는 꿈을 꾸게 해달라.“흥부가 따로 있나 내가 바로 그 착한 현대판 흥부다”“제비야 박씨를 물어 오라며”며 돈독이 올라 입에 나오는 대로 미친 듯이 지껄였다.

방세 못낸 서민은 “돈•돈•돈 원수로다” 신세타령

땅 못지 않게 도시에 집을 가진 사람들도 살다가 때를 만났다. 방을 구하는 사람이 많아 셋방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아무리 구석방이라도 내놓으면 금방 나갔다. 집 주인들도 방세를 받는 재미에 연일 싱글벙글 거리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당도 없었다. 빈 공간만 있으면 방을 넣었다. 그러다 보니 동네마다 매일 집을 고치는 공사가 줄을 이었다. 늘어선 쪽방에 부엌은 하나 뿐이었다. 오늘 이방에서 무엇을 해먹고 저 방의 반찬이 무엇인지 훤하게 알 수 있었다.  한집에 셋방이 10개가 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세만 받아도 시시한 월급쟁이보다 수입이 많았다. 그러니 그들은 하루가 신바람이 났다. 반면에 시골에서 흘러 들어온 사람들은 비싼 방세를 내지 못해 “돈•돈•돈•돈이 원수로구나!”쓴 소주를 마시며 한을 삭여야 했다.

김해에서 사업을 하는 김이권(69)씨는 70년대 초 사업으로 큰돈을 벌어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지금은 사업에 실패해 밥도 근근이 먹고산다고 한다. 요즘 들어 돈이 궁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저 놈의 여편네 때문에 내가 이 생고생을 한다고 욕을 끌어 붓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업이 한창 잘 나갈 적에 지인이 어디에 땅을 사 두면 앞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정보를 주었다.

일확천금을 눈앞에 두고 나니 도저히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저 땅을 사두면 10년 후면 벼락부자가 된다. 돈 다발이 눈에 빙글빙글 돌았다. 그래 이번 기회가 일생일대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하늘이 주신 기회다. 그 길로 하던 일을 박차고 집으로 달려갔다. 은행에 넣어둔 돈 2000만원 찾아 오토바이에 싣고 골목길을 돌아서는 순간 자신의 마누라가 방금 숨이 넘어 갈 듯이 달려와 오토바이를 잡고 매달렸다. 완전히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이었다. “그 쓸모 없는 땅 사 가지고 흙 파먹고 살일 있나”“이 양반이 돈에 환장을 했나” 당장 포기하라고 악을 썼다.

“모르면 집에 가서 자빠져 있거라”“남자 하는 일에 뭐 안다고 설치나 한 십년 푹 담가 놓으면 금이 주렁주렁 열릴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다. 이 양반 눈에 허깨비를 씌웠나 십 년 후에 그 팔자를 안 고쳐도 좋으니 당장 그만 두라고 거품을 물었다. 길바닥에서 돈 가방을 서로 빼앗으려고 밀고 당기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돈 묶음이 풀려 바람에 날려 버렸다. 길에는 돈이 허옇게 깔렸다. 마누라는 “아이구 내 돈 내 돈하며 아무도 손대지 마라”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정신 없이 돈을 주웠다.

지나가는 사람이 주워주면 고맙다는 인사는 뒷전이고 한 장이라도 슬쩍 해 가지고 갈까봐 두 눈에 불을 켜고 아래위를 살폈다. 사람들이 궁금해 우르르 몰려오자 마누라는 돈을 지키려는 욕심에 얼마나 다급했는지 돈 위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침을 세 번 뱉고는 “여기는 내 땅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놈은 내 아들이다”며 선전포고를 하고 눈을 사방으로 긴박하게 굴렸다. 그리고는 저 양반 똥 고집에 오늘 개 우세를 한다며 집에 가서 보자고 잔뜩 엄포를 쏘았다.

“굼벵이를 삶아 먹었나 그 엉덩이가 와 그래 무겁노”“사시사철 보약 먹은 그 기운은 말끔 엉뚱한 곳으로 다 보내고 숨이 차 쌕쌕 하느냐”며 이 위급한 상황에 돈을 줍는 동작이 느리다고 닦아세웠다. 그 바람에 땅을 사는 것을 포기했다. 지금도 그때 그 돈이면 땅 수 만평을 사 지금쯤 돈방석에 앉았을 텐데 자꾸만 곱씹어 진다고 한다. 저 족제비 같은 마누라가 일을 망쳤다며 혀를 찬다.

부산에 사는 이청수(64)씨는 부동산 중개인을 했는데 소개한 땅이 팔고 나자마자 땅 값이 치솟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뻔했다. 자기네 동네도 도시에 편입된다는 정보를 입수한 투기꾼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자신에게 땅을 소개해 주면은 사례금을 두툼하게 주겠다고 해 내 일 같이 발 벗고 나섰다. 문제는 판 땅이 몇 곱으로 비싸게 팔려나가면서였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들이 닥쳤다. “그놈들과 짜고 돈을 얼마나 받아먹었나”“지 동네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고 너만 잘살겠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작대기로 밥상을 엎어 버렸다. 아무리 돈에 눈이 뒤집혀도 그렇지… 그리고는 이놈이 동네 말아먹을 놈이라며 머리채를 잡고 끌어냈다.

여자들도 모르면 가만히 있을 것이지 까불다가 좋은 꼴 났다며 손을 쑥쑥 내밀었다. 한마디 했다가는 뼈도 못 찾을 것 같았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손이 닳도록 빌었다. 동네 어른들은 지금 심정 같아서는 멍석말이를 해 패 주고 싶지만 참는다. 못 된 놈 당장 동네를 떠나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일로 고향에 살지 못하고 쫓겨 나왔다고 한다.

밥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급속하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땅값이 폭등했다. 하루아침에 수 억대의 땅 부자가 속출하면서 졸부들의 살 맛난 이야기는 어디 이것뿐이랴.